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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다하겠다" 이낙연의 슬기로운 정치 복귀? [여의(汝矣)도록(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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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27 14:00:00 수정 : 2023-06-29 13: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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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1년여 만에 미국 유학 마치고 귀국
“못다 한 책임 다하겠다” 사실상 정계 복귀

사법리스크·혁신위 논란 등 이재명 리더십 손상
이낙연, 민주 ‘대안부재론’ 뚫을 수 있을지 관건
여의도는 작지만 넓은 섬이다. 규모는 작은 섬(여의방죽 안쪽 넓이 기준 2.9㎢)이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의 중심지다. 대다수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여의도에 거점을 튼 뒤 여의주(如意珠)를 거머쥐었고, 숱한 정치지도자가 이곳에서 명멸했다. 그래서일까. 여의도는 잉화도(仍火島), 나의도(羅衣島), 여의도(汝矣島) 등으로 불렸는데, 이 명칭들의 유래는 ‘넓은 섬’이라고 한다. 여의도에서 펼쳐지는 정치인의 입과 동선에 주목하는 것도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서다. 세계일보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모멘텀이 될 순간을 포착해 [여의(汝矣)도록(圖錄)]​ 코너로 연재한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사진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지난 2021년 1월 세계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장면 하나

 

“왜 지금까지 (유학을) 가지 않았냐 하는 분들도 있다. 바로 가고 싶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지원을 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해 6월7일,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직전 자신을 배웅해주던 지지자 300여명에게 이같이 말했다. 대선 이후,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 ‘개딸’ 공격에도 지방선거까지 모두 치르고 유학을 떠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12대 5.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6·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단 5곳을 사수하는데 그쳤다. 선거 패배 원인을 두고 이재명 대표 ‘방탄’ 논란과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꼽힌 가운데, 이낙연 전 대표도 이 대표 강성 지지자인 개딸로부터 화살을 맞았다. 이 전 대표가 제대로 돕질 않아서 대선과 지방선거도 졌다는 식이었다. 대선 당시, 이재명 캠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지방선거에서도 전국을 다니며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이 전 대표를 향한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멸칭으로 쓰인 ‘수박’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 전 대표 지지자들도 ‘수박’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전 대표는 그런 지지자들에게 “경멸과 증오, 저주를 정의와 선함으로 이겨 달라”고 격려한 셈이다. 당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지선 패배 이후 당 상황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는 “동지들이 양심과 지성으로 잘 해결해가리라 믿는다”라고 짧게 답했다.  

 

이낙연 전 대표 출국 뒤 민주당은 이재명 체제로 급속히 전환됐다. 이재명 대표는 숱한 논란에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하고 전당대회까지 출마한다. 당 바깥에서는 불체포특권을 노린 방탄 출마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 대표는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47.83%의 민심을 저버릴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핵심 친문으로 꼽히던 전해철·홍영표 의원 등은 당권에서 점차 멀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왼쪽),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2022년 8월 전당대회는 ‘이재명의, 이재명을 위한, 이재명에 의한’ 전당대회였다. 직전 대선후보였던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대표에 오른다. 최고위원 선거도 흐름이 같았다. 정청래·서영교·박찬대·장경태 의원 등 최고위원 후보들은 이 대표 선거운동 동선을 따라다니며 사실상 공동선거운동에 나섰다.

 

‘7인회’ 정성호·김병욱·김영진·임종성·문진석·김남국 의원이 핵심으로 떠올랐고, 여기에 구(舊)박원순계와 강성 초선 의원 그룹, 기초지자체장 출신 정치인들이 결합했다. 비명계는 비주류로 물러났고, 친이낙연계는 그야말로 ‘개밥에 도토리’ 수준이 됐다. 최고위원선거에 나선 이낙연계 윤영찬 의원은 비이재명계 후보인 송갑석 의원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에서 물러났지만 송 의원은 끝내 낙선했다. 당연직 최고위원 박홍근 원내대표도 친명계로 분류된 상황. 이재명 체제 지도부에서 비명계는 고민정 의원뿐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스1

#.장면 둘

 

이재명 체제 민주당은 해가 바뀌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일대오만 강조하던 지도부에 피로감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 당규상 5월에 치러야 할 원내대표 선거가 연초부터 언급됐다. 박광온∙전해철∙홍익표 의원 등 구체적인 원내대표 후보군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수면 아래에 있던 이재명 체제에 대한 피로감은 2월27일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이날 국회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표결했다. 민주당은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사정은 달랐다.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 찬성표가 절반을 넘지 못해 부결됐지만 민주당 내에서 30여표가량 이탈표가 발생했다.

 

3월 초,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전모씨가 사망하면서 사법리스크가 다시 부각됐다. 당내 여러 그룹에서는 이 대표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며 당지도부 쇄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 대표는 지명직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전략기획위원장을 비명계 의원으로 교체했다. 또 ‘수박 사냥’에 나선 자신의 강성 지지층에게는 “당내 다른 의견도 인정해야 한다”고 나서며 원내 민심 다독이기에 나섰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스1

인적 쇄신을 통해 분열은 막았지만, 민주당은 다시 격랑으로 빠져들었다. 송영길 체제에서 사무부총장에 기용된 이정근 전 서초을지역위원장 재판 도중, 2021년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전 대표 캠프에서 돈봉투를 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관련자 통화 녹음까지 공개되자 당은 격랑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송 전 대표가 이 대표를 내심 지원했다는 ‘이심송심’ 논란까지 다시 부각되면서 이 대표도 유탄을 맞는다.

 

5월 원내대표 선거. 의원들은 친문계이자 이낙연 전 대표 체제에서 사무총장을 지낸 박광온 원내대표를 결선 없이 선출한다. 친이재명계 일변도 당지도부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투표라는 해석이 나왔다. 박광온 원내지도부가 개최한 첫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은 당을 혁신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혁신의 방향과 혁신기구의 권한부터 합의가 되질 않았다. 돈 봉투 해법과 관련, 친명계에서는 “대의원제 폐지” 요구를 하며 이 대표 권한은 침해하지 않는 혁신기구가 들어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비명계는 “이재명 지도부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양측의 보이지 않는 샅바 싸움은 의외의 지점에서 결론이 났다. 5월 어린이날, 한 언론 보도가 민주당을 들쑤셨다. 7인회 멤버이자, ‘이재명 키즈’로 불린 김남국 의원이 임기 도중 상당한 액수의 가상자산을 거래한 흔적이 있단 보도였다. ‘청빈한 젊은 정치인’을 표방해온 김 의원이, 그것도 상임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코인을 거래했단 기록까지 나왔다. ‘이모 논란’을 빚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코인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민심 이반이 가시화됐다.

 

민주당은 의혹이 최초로 알려진 지 닷새 만에 당 조사위를 꾸렸지만, 이마저도 김 의원이 탈당을 택하면서 징계 절차는 중단됐다. 민주당은 김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지만 늑장대처이자 온정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측근 가상자산 논란∙민심 이반∙전당대회 돈 봉투 논란까지 겹치자 ‘당지도부를 존중하는 혁신기구’는 명분을 잃었다.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 뉴스1

#. 장면 셋

 

지난 5일 이재명 대표는 혁신기구에 전권을 넘기겠다고 밝히며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혁신기구 책임자로 내정했다고 갑작스럽게 발표한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9시간 만에 물러났다. 천안함 피격 사건을 ‘자폭’이라고 주장하고, 미 CIA가 대선에 개입했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글이 문제가 됐다. 당장 인사검증이 미비했다는 비판과 동시에 당내에서는 “친위 쿠데타를 도모하다가 실패한 것 아니냐”, “혁신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돈 봉투 논란을 타개하기 위해, 혁신기구 설치까지 한다고 했지만 무소속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결국 부결됐다. 윤석열정부 들어 국회에 전달된 노웅래·이재명·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전부 부결되면서 ‘방탄민주당’이라는 오명도 뒤집어썼다.

 

8일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의 만찬에 나섰지만 결국 ‘전랑 외교’의 먹잇감이 됐다. 싱 대사는 모두발언에서 15분 동안 우리 정부 외교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특히 “중국 국민은 일치단결해서 시진핑 주석의 지도하에 위대한 중국몽(中國夢)을 진행한다는 결심을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과 티벳을 방문한 민주당 도종환(가운데)·박정(오른쪽)·신현영 의원 등이 지난 18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외교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도종환·민병덕 의원 등 7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15~18일 중국 베이징과 티베트를 방문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체제 선전에 이용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도 의원은 CBS라디오에서 “인권 탄압은 1951년, 195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고, 민 의원은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70년 전에 있었던 그 내용을 우리가 부각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이 대표의 19일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당 안팎의 복잡한 상황을 정면돌파해 내년 총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새로 꾸린 ‘김은경 혁신위원회’마저도 이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이 다수 포진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혁신위원회가 별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이 전 대표는 "국민이 나라 걱정하는 지경"이라며 "못다한 책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취재사진

#. 장면 넷


24일. 이낙연 전 대표가 예고한 대로 1년여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잘 닦아 반들거리지만 오래 신어 주름이 있는 검은 구두, 청록색 넥타이 차림은 출국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와 쓰는 말은 달라졌다. 그는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며 “제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계 복귀 선언이다. 

 

이 전 대표의 별명은 ‘엄중 낙연’이었다. 어떤 현안을 물어보더라도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는 식으로 답하는 등 ‘고구마 화법’을 쓰는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날은 이 전 대표가 국무총리 시절, 현재 여당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공격을 받아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 전 대표는 지지자들을 향해 “다시는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정부에도 “모든 국정을 재정립해주길 바란다. 대외관계를 바로잡아주길 바란다”라고 간명하게 비판했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을 향해서도 메시지를 냈다. 일본에는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를 중지하고 대안을 찾아달라”고, 미국과 중국에는 “대한민국을 더 존중해야 옳다”고, 러시아에는 “침략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낙연계 이병훈 의원은 “당내 현안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다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낙연계 윤영찬 의원은 26일 CBS라디오에서 이 전 대표 발언과 관련 “대한민국의 퇴행과 후퇴에 대한 말 정도를 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겠다’라는 말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좀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 변화된 모습을 보이겠다 이런 각오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내다봤다. 윤 의원은 이 전 대표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소통을 해왔던 측근이다. 이 전 대표 체제에서는 ‘모든 자리에 측근을 앉히면 뒷말이 나올 수 있다’는 취지로 당직을 맡지 않은 인사기도 하다. 그런 윤 의원도 놀랄 정도로 이 전 대표의 화법은 바뀌어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다음 장면은?

 

이 전 대표는 당분간 외교·안보 강연과 정책 개발 등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상 다시 대권 행보에 나선만큼, 이 전 대표도 적잖이 소환될 전망이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자신의 강점으로 ‘외교 경험이 많다’는 점을 꼽아온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5선 국회의원·재선 전남지사·국무총리·집권여당 당대표를 역임했다. 문재인정부 국무총리 시절에는 30개국을 다니며 직접 외교 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쓴 ‘대한민국 생존전략’에는 미국에서 공부한 국제관계와 자신의 경험이 담겼다. 이와 함께 ‘연성강국 신외교’를 국가비전으로 내세웠다. 국방력 등 하드파워가 아니라 문화가 힘이 되는 ‘소프트 파워’ 강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한·미·일과 북·중·러라는 대결구도에 갇히지 않은 유연한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담았다. 이 전 대표는 책에서 “평화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세계 다섯 번째 나라, G5로 도약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여야 공히 ‘외교 논란’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 전 대표는 자신의 비교우위로 ‘외교’를 들고나온 셈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그동안 ‘대안부재론’ 주장이 나왔다. 이재명 대표를 대체할 인물이 민주당 내에 없는 만큼, 비명계는 구심점을 찾지 못할 것일 만큼, 당내 분란을 일으키기보다는 이재명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전 대표 귀국 당시, 이 전 대표 지지자 1500여명은 레드카펫을 깔듯 ‘인간 띠’를 둘러 이 대표를 맞았다. 인간 띠는 입국장부터 공항 출구 밖 도로까지 이어졌다.

 

한때 40%에 육박하던 이 전 대표 대선 후보 지지율은 이제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이 전 대표가 대안부재론을 뚫어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대표 외에 지지층 동원이 가능한 정치인은 현재까지 이 전 대표뿐이다.


김현우 기자 wit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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