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전남에서 첫 보고…한국 자생 ‘토착종’
‘페데린’ 닿기만 해도 가려움·물집·작열감 유발
2∼3주간 고통…병원 찾아 적절한 치료 받아야
“벌레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어요.”
폭염과 준비 부족으로 파행을 겪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소한 많은 외국인 대원들은 ‘화상벌레’를 복병으로 지목했다.
한두명의 볼멘소리가 아니다. 새만금 잼버리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일 하루 잼버리 참가자 중 1296명이 영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 원인이 △벌레 물림 368명(28.4%) △일광화상 180명(13.9%) △피부병변 88명(6.8%) △온열손상 56명(4.3%) 등으로 실제 벌레물림에 고통받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한 외국인 참가자는 벌레로 인해 성한 곳이 없는, 다소 충격적인 다리 사진을 한국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퇴영 후 서울 호텔로 이동한 대원들 사진에서도 벌레에 초토화된 피부가 다수 포착됐다. 네티즌들은 ‘고생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 잘 치료받으면 좋겠다’, ‘정부가 참가자 전원에 배상해야 한다’ 등 걱정과 분노 어린 반응을 쏟아냈다.
대체 화상벌레가 뭐기에 사람의 피부를 이렇게 만들어 놨을까.
◆스치기만 해도 물집…작열감 등 고통
화상벌레의 공식 명칭은 ‘청딱지개미반날개’다. 날개가 진한 녹색이며 개미와 비슷하게 생겨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성충 크기가 대개 1㎝ 이하로 크지 않으며 딱정벌레목 반날개과에 속한다.
청딱지개미반날개는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은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고 해서 ‘화상벌레’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화상벌레가 인체에 해를 입히는 이유는 ‘페데린’이라는 독성 방어 물질을 갖고 있어서다. 페데린은 곤충이 지닌 독성 중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청딱지개미반날개는 물거나 쏘지 않지만 페데린을 뿜어 사람의 피부에 닿기만 해도 ‘페데러스 피부염’이라는 증상을 일으킨다.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른데 보통 2시간∼12시간 이후 붉은 발진이 올라오며 물집이 생긴다. 물집이 점점 심해져 이후 거의 종기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가려움을 유발하며 매우 따갑고 후끈거리는 작열감과 통증을 동반한다. 물집이 터지면서 상처 부위가 갈라지는 증상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2∼3주간 매우 고통받을 수 있다.
◆해외 유입 신종 아닌 “한국 토종”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런 벌레가 왜 새만금에서 나타났을까. 혹시 외래종은 아닐까.
화상벌레는 2019년에도 전국 곳곳에서 발견돼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국립농업과학원은 이 화상벌레가 외래종이 아닌 ‘토종’이라고 밝혔다.
질병관리청도 “청딱지개미반날개는 1968년 전남지역에서 국내 처음 보고된 전국 자생 토착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낮에는 논과 같은 습지에서 해충을 잡아먹고, 밤에는 빛에 이끌려 실내로 유입되거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곤충학 박사인 국립공원공단 한태만 책임연구원은 8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원래 이 곤충은 전국에 흔하게 분포하는 종이다. 다만 많이 발생해서 사람한테 문제가 될 때가 있고 적을 때가 있는데, 지난해에는 잠잠했고 최근에는 안타깝게 잼버리 대회장에서 많이 발생한 것 같다”고 밝혔다.
청딱지개미반날개는 습기가 많은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논밭 지표면에서 작은 유기물 등을 먹고 살아간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고 불빛에 이끌리는 습성도 이 벌레 특징이다.
덥고 습한 데다, 밤에는 전등까지 켜지는 새만금 잼버리 야영지는 화상벌레가 선호하는 환경을 완벽히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날이 추워지면 화상벌레의 활동은 물론 독성도 줄어든다. 문제는 환절기다.
한 연구원은 청딱지개미반날개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시기가 원래 여름보다 밤 기온이 내려가는 환절기, 온기와 빛을 찾아 가정집으로 침투할 때라며 “당분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살충제 직접 분사…맨손 접촉은 금물
화상벌레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모기약 등 살충제를 사용하면 되는데, 근처 허공에 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많이 분사해야 효과가 있다. 딱정벌레이기 때문에 외피가 단단해 약성분이 쉽게 침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체를 처리할 때도 직접 만지지 않고 휴지 등을 사용해 피부에 접촉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만일 청딱지개미반날개에 닿았다면 피부를 즉시 흐르는 물에 씻는다. 이후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되지만,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이나 약국을 찾아 치료나 처방을 받는 것이 좋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