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당시 서울에 가려면 기차로 7시간이 걸렸는데, 의자에 기대면 두루마기가 구겨지니 큰스님은 꼿꼿하게 앉아 가셨습니다.”(조계종 원로의원 법등스님)
“30여년 전 서울로 외출하신 틈을 타 몰래 큰스님 목욕탕에서 샤워하는데 큰스님이 갑자기 돌아오셔서 크게 혼났어요. 왜 다시 오셨는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뚤게 놓고 간 책상의 책을 바르게 놓으려고 돌아왔다’고 합니다.”(직지사 주지 장명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과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장 등을 지내며 종단 안정과 발전, 후학 양성에 힘쓴 뒤 2017년 입적한 영허녹원 대종사에 대해 제자들이 ‘엄했던 스승이셨다’며 소개한 일화이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녹원스님이 법회에서나 일반 불자들 앞에선 한없이 자애롭고 부드러운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녹원스님 추모집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 출간 간담회 자리에서다. 녹원스님의 ‘손상좌(제자의 제자)’였던 묘장스님은 이 책을 기획한 계기에 대해 “연화사에서 5년 정도 있으면서 큰스님이 불자들을 대할 때 굉장히 따뜻하게 자비롭게 대하던 모습, 동국대 이사장 시절 굉장히 엄격하고 철저한 행정가로서의 모습을 봤다”며 “큰스님을 기억하는 사람마다 그 모습이 다를 것 같아서 ‘이런 기억들을 모아 기록하면 큰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장명스님은 녹원스님이 엄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지만 7∼8년 정도 모셨을 때 처음으로 속세의 이력과 신상을 물어보더니 “장명이 덕분에 편안하게 잘 쉬었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큰스님을 평생 20년 넘게 모셨지만 스님이 남긴 족적이라든가 스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 살아가는 제 모습에 그대로 표현된다”며 “내가 허튼 생각과 행동을 하고 좋지 않은 상황에 있을 때마다 ‘큰스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 자리에는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도 함께했다. 국회 불자 모임 ‘정각회’ 회장이기도 한 주 의원은 1990년대 초반 대구지법 김천지원 판사로 있을 때 직지사에 머물던 녹원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틈날 때마다 녹원스님을 찾아가곤 했다는 주 의원은 “(녹원스님이) 당시 남북문제라든지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다”며 “특히 판사였던 제게 공직자로서 지녀야 할 바른 마음가짐을 유지하도록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책에는 조계종 원로의장을 지낸 도원스님을 비롯해 녹원스님과 함께한 수행자 15명, 김종빈 전 검찰총장과 부인 황인선 씨 등 스님의 길을 따르는 수행자 13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들은 녹원스님을 “진정한 리더”, “불교정신에 가장 충실했던 수행자”, “아버지 같았던 스승님”, “언제나 공(公)을 위했고 사(私)가 없었던 어른” 등으로 기억했다.
녹원스님은 1928년 3월 4일 출생했으며 12세인 1940년 경북 김천시 직지사로 입산 출가해 다음 해 탄옹 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30세인 1958년 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 승격된 직지사의 초대 주지로 임명돼 7차례 연임했으며 1984∼1986년 제24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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