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퇴임 후 처음으로 서울을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 정부의 안보와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그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화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 전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언제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탄난 지금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착잡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려는 고사하고 최근 북·러 정상 간 무기 거래 의혹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이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고스란히 현정부에 떠넘겼다. 그럴 자격이 있나 싶다.
그는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지금도 군사 충돌을 막는 최후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어불성설이다. 당시 문재인정부는 남북 간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사실상의 불가침 합의서’란 의미를 부여했지만 이후 미사일·방사포 발사와 감시초소(GP) 조준 사격,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무인기 영공 침범 등 북한이 자행한 도발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가뜩이나 핵·미사일의 고도화로 9·19 합의의 실효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이 어제 “굴종적으로, 겉으로 보이는 한산한 평화로운 상황이 평화는 아니다”라고 반박한 배경이다.
문 전 대통령은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도 “(문재인정부의)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지금보다 좋았다”면서 “경제는 보수 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날 선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 15일 감사원이 문 정부 주택·소득·고용 통계를 ‘조작’으로 규정하고는 청와대 정책실장 등 관련 인사들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상황에 대한 반발이다. 전직 대통령이 그것도 야권 인사끼리만 모인 행사에서 현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단식 20일을 맞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서는 단식을 만류하면서도 더불어민주당 구심점으로서 존재감을 내보였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현실 정치에 개입해 왔다. 퇴임 직후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더니 행동은 정반대다. 전직 대통령이 화합을 도모하기보다 진영논리와 갈등을 부추겨 스스로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켜 오진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런 문 전 대통령을 향해 홍준표 대구시장이 어제 “이제 그만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더 나선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극한 대립구도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거다.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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