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시민들 일상의 평온을 해치는 집회와 시위를 규제하는 법안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어제 밝혔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한밤중 집회와 시위를 전면 금지하고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평일 출퇴근 시간대 주요 도로의 집회와 시위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4개월 전 정부와 여당이 밝힌 방침을 그대로 되읊은 것이라서 새롭지는 않다. 오히려 국민에게 불편을 넘어 고통까지 주는 집회와 시위를 버젓이 방치하는 사회가 정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월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민노총 건설노조의 야간 노숙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밤새 술판이 벌어지고 여기저기 방뇨가 이뤄지면서 도심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수십톤의 쓰레기와 악취가 넘쳐나 출근길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아파트 공사장 등에서 자기네 노조원을 써달라고 생떼를 부리면서 벌이는 시위현장의 확성기 소음은 또 어떤가. 다수에게 고통을 안겨서라도 제 잇속만 챙기겠다는 놀부 심보다. 주민이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면 소리만 낮춰 단속을 피하는 식이다.
24시간 불법시위 천국이 된 건 국회의 직무유기 탓이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야간 집회 금지의 입법목적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로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걸 문제 삼았다. 당시 헌재가 2010년 6월30일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했는데도 국회가 입법에 나서지 않아 13년 넘게 입법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으니 도대체 국회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사법부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걱정이다. 그제 서울행정법원은 전국금속노조가 심야 노숙집회를 금지한 경찰의 처분 집행을 정지해 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국회가 하루빨리 입법으로 풀어야 한다. 이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집시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 만큼 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와 권리는 보장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안기면서까지 누릴 자유와 권리는 세상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내 권리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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