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3주년… ‘나 홀로 표지석’ 보완·건립 목소리도
1950년 6월 25일 포성 가득한 굉음과 함께 기습적으로 벌어진 6·25전쟁. 병력과 장비가 월등했던 북한군의 파죽지세에 연합군은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일촉즉발 위기 속에서 가까스로 낙동강 전선 방어에 성공했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단행된 인천상륙작전으로 승리의 전환점을 맞았다. 밀리던 전세는 금새 역전시켰고 서울 탈환과 북진의 계기를 마련했다.
28일 인천연구원의 2023년도 기획연구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 확대 추진 방향과 과제’를 보면 73년 전 미군 중심의 연합군이 육지에 오른 곳은 총 3곳이었다. 9월 15일 오전 첫 바닷물이 가장 꽉 차게 들어왔을 때에 맞춰 암호명 녹색해안(Green Beach·월미도)을 시작으로 오후 만조 시간 때 적색해안(Red Beach·내항 북성포구) 과 청색해안(Blue Beach·송도해안)으로 단계적 감행이 이뤄졌다.
최초 상륙 지점은 현 위치로 중구 월미도 선착장의 그린비치. 여기에 미군 제1해병사단 제5연대 제3대대가 투입됐다. 다른 2곳은 동구 만석동 대한제분 입구 레드비치와 미추홀구 용현5동 해안도로 입구 블루비치다. 각각 미군 제1해병사단 제5연대 및 한국 제1해병연대, 미군 제1해병사단 제1연대에서 후속으로 참전했다. 당일 20명이 전사하고 187명은 부상했다고 기록에 나온다. 인근 월미공원 땅굴 속에 100명이 넘는 북한군이 생매장됐다고 전해진다.
올해 73주년을 맞아 과거의 랜딩비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를 알리는 표지석이 ‘나 홀로 시설’로 접근성이 취약해 활용도가 매우 낮다는 데에 주목한다. 먼저 녹색해안 표지석은 실제 작전이 수행된 곳이 아니라 전쟁 후 매립된 선착장에 놓였다. 이에 정확한 본래 장소인 해경순시선이 전시된 월미문화관 서쪽으로 옮기는 한편 지금의 공간에 관련 공원을 두자고 제안한다.
적색해안의 경우 규모가 협소한 공원 내 세워져 가까운 갯벌 일부를 매립해 새로 선보이자는 의견이 나온다. 동시에 미군이 사다리를 이용해 방벽을 넘는 모습 형상화 및 한국해병대 조형물 설치를 더하자고 한다. 끝으로 청색해안은 아암대로를 들어가는 곳에 자리한 탓에 누구라도 쉽게 찾아갈 수 없다. 주변의 갯벌 경관과 용현지구 공유수면매립지 등을 연계시킨 역사휴양시설로 변화를 건의한다.
인천연구원 남근우 연구위원은 “현재 표지석은 기념비나 추모비의 성격보다 단순히 특정 지점을 표시한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한 곳은 잘못된 위치에 설치됐다”며 “국내의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동시에 추가적인 시설물 및 접근성 개선으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공원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나아가 인천상륙작전이 지닌 자유·평화 수호의 가치를 통해 국제외교 무대의 장으로 만드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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