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핫라인과 초짜 싸움에서 초짜가 이겼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지원에 나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사전투표일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대통령과 핫라인이 (연결)돼서, 해달라고 요구하고 전화해서 대통령에게 ‘도와주십쇼’ 해야 싹싹 될 것 아니냐”고 했고, 윤재옥 원내대표는 “(진교훈) 민주당 후보는 검증이 안 됐고, 구청 행정에 대해 잘 모르는 초짜 후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민주당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한때 당 수장이 구속 위기에 놓이는 등 긴박한 국면에서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번 선거 패배는 국민의힘으로선 뼈아프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김승현 후보(48.69%)에게 승리한 김태우 전 구청장(51.3%)이 단 일 년 만에 39.37%로 진교훈 후보(56.52%)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뒤를 정의당 권수정 후보와 진보당 권혜인 후보 등 진보 성향 후보들이 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보수의 참패다. 1년 만에 국민의힘은 왜 민주당에 참패했을까.
12일 정치권에선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각종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중 민주당 측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싸움에서 이 대표가 이겼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핫라인으로 김 전 구청장을 강조했다. 즉 김 전 구청장이 윤 대통령과 직접 연락이 가능한 거물인 만큼, 향후 강서구 발전에 크게 기여할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었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법원의 기각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초단체장 보궐선거인데도 불구하고 김기현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상주하듯 연일 지원 유세에 나섰고, 전국의 당협위원장 및 시도의원까지 총출동하는 등 여당 스스로 선거판을 키웠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대표 영장 기각은 여당에 악재가 됐다. 장기화된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느슨했던 민주당 지지층은 결집했다. 이 대표 구속을 예상하고 야당 심판론을 제기했던 국민의힘은 ‘힘 있는 여당 후보’로 전략을 수정했다.
여기에 김 전 구청장의 입도 논란이 됐다. 선거 과정에서 김 전 구청장은 보궐선거 비용 40억원에 대해 “애교로 봐달라”고 하거나, “재개발 시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앞으로도 강서구에 집을 보유하지 않겠다”라는 등 돌발 메시지를 던졌다.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을 한 김 전 구청장 출마 자체가 문제였다는 의견도 있다. 구청장 자리가 공석이 돼 다시 뽑는데, 이 상황을 만든 원인 제공자가 출마했다는 것이다. 김 전 구청장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확정판결을 받고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3개월만에 출마 자격을 얻었고, 국민의힘은 김 전 구청장을 다시 출마시켰다. 이번 패배에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책임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국민의힘을 비롯해 대통령실에서도 그의 패배 가능성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를 바로 잡겠다는 윤석열 정부 명분에 지난 정권 비리를 폭로한 김 전 구청장이 공천권을 받았다. 여기엔 검찰 수사관 출신이라는 윤 대통령과 직간접적인 관계도 작용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김 전 구청장이 특별사면을 받고 곧바로 출마의지를 드러낸 것 자체가 짜고 치는 판이었다는 것”이었다며 “결국 (여당이) 예견된 패배에 무리수를 둔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의 패배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이번 선거에 패배 원인을 분석한 뒤 책임질 사람은 나오지 않겠느냐”며 “현재 상황에서만 보면 내년 총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내부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번 선거는 총선을 6개월 앞둔 시점, 그것도 총선 승부를 좌우할 서울 지역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총선 전초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대표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수사와 윤심을 내세운 후보가 참패하면서 여당으로선 내년 총선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에 국민의힘 내부에서 지도부 책임론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 변화를 요구하는 보수층의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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