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 시간 아껴주는 서비스 지갑 열어
AI 등장 속 인문학적 문해력 더욱 중요
부·외모·집안 등 완벽한 사람 추종하며
젊은 세대 대리만족… 자기검열 현상도
재미 위해 다양한 시도 마다않는 ‘도파밍’
6시 신데렐라 자처 ‘요즘 남편’ 부상 등
2024년 주목할 만한 소비트렌드 10개 꼽아
트렌드 코리아 2024/김난도 외 11명/미래의 창/1만9000원
“9시1분은 9시가 아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에 있는 첫번째 원칙이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과 더불어 1분 단위로 시간을 쪼갤 만큼 ‘시간 가성비’를 중시하는 최근의 흐름을 보여준다. 약속보다 10∼20분 늦는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이른바 ‘코리안 타임’은 이제 민폐다.
매년 10개의 소비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하는 ‘트렌드 코리아’가 2024년 우리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대표적 키워드로 시간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초(分秒)를 다투며 산다는 의미로 ‘분초사회’를 꼽았다.
유튜브에서 16부작 인기 드라마의 요약 영상이 인기를 끌고, 넷플릭스는 재생속도 1.25배, 1.5배 속도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도입했다. 동네 유명 맛집 줄 서기, 자녀 등하교 라이딩, 강아지 산책시켜주기 등 시간을 아껴주는 대행 아르바이트 등도 인기다. 가격 대비 성능의 효율을 의미하는 ‘가성비’보다 시간 대비 성능의 효율 즉 ‘시성비’가 중요해져 소비자들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주는 서비스에 지갑을 열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렌드 코리아 2024’(미래의창)는 이외에도 9가지 트렌드를 꼽았다. 올해 핵심 화두였던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인간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트렌드 코리아’ 저자들은 챗GPT가 꼽은 2024년 8개 트렌드를 보고는 안도했다고 한다. AI가 기계적인 생산성은 월등히 높여줄 수 있지만,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기대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여전히 인간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성형 AI를 능숙하게 사용하면서도 인공지능에게 미흡한 부분을 창의적으로 보완해나갈 수 있는 인문학적 문해력을 갖춘 사람,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us)’를 키워드로 꼽았다.
프롬프트란 원래 컴퓨터가 명령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단말기의 신호로, 윈도 이전 도스 운영체제에서 반짝이는 밑줄을 의미한다. 호모 프롬프트는 ‘AI 조련사’, ‘AI 위스퍼러’로도 불리며, 해외에서는 4억원의 연봉을 내걸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를 구인하는 회사들이 나오고 있다.
다음은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특기 등 모든 면에서 약점 없는 완벽한 사람을 의미하는 ‘육각형 인간’이다. 어떤 대상이 가진 여러 특성을 비교분석할 때 사용하는 육각형 이미지를 헥사곤 그래프라고 하며, 모든 기준 측이 끝까지 꽉 차 완벽한 모습을 보이면 정육각형이 되므로 육각형은 ‘완벽’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난 용이나 고진감래의 서사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지만, 최근에는 태어날 때부터 부(富)와 외모, 실력을 갖춘 완벽한 주인공에 열광한다. SNS에는 #육각형 연예인 #육각형 아이돌 #육각형여자·남자 등 #육각형○○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육각형 인간이 될 수 없다면 집안이나 외모 등을 타고난 사람을 추종하며 대리 만족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완벽한 라이프 스타일을 뽐내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도 있지만, 젊은 세대가 치열한 경쟁과 자기 검열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육각형 인간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상품도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으며 공급자와 유통자는 가격을 전략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는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도 주목할 키워드다.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는 야구장 티켓 값을 AI에게 맡겨 2022년만 해도 6가지였던 옵션을 85가지로 늘렸다. 동일한 상품에는 동일한 가격이 존재한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이 ‘일물N가’의 법칙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도파민이 분출되는 행동이라면 다양한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도파밍’도 눈여겨볼 트렌드다. 도파밍은 도파민과 게임에서 캐릭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농작물을 수확하듯 아이템을 모으는 ‘파밍(farming)’을 결합한 용어다. 일과 재미의 경계가 무너지고 지친 일상에 위로를 주는 놀이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상품과 서비스가 상향평준화되면서 기업들이 본업만 잘해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만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작은 활동 하나하나에까지 재미 요소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아내의 소득이 높다면 기꺼이 가장의 역할을 넘기고 내조할 준비가 돼 있으며, 육아를 위해 정시에 바로 퇴근하며 ‘6시 신데렐라’를 자처하는 ‘요즘남편 없던아빠’, 영화나 드라마 원작에서 파생된 작품을 지칭하던 스핀오프가 새로운 고객과 시장 확대를 위해 브랜드, 기술, 조직관리뿐 아니라 개인의 경력 개발로 확대되는 ‘스핀오프 프로젝트’, 시간 절약 및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정보 탐색 등을 생략한 채, ‘나도(Ditto)’하고 특정 사람·콘텐츠·커머스를 추종해 구매하는 ‘디토소비’ 등도 부상할 전망이다.
인구소멸 지역으로 꼽혔던 강원도 양양이 서핑의 성지가 됐듯, 지역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적 자본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다양한 사람들의 시너지가 흘러넘치는 도시의 유연한 변화를 의미하는 ‘리퀴드 폴리탄’, 장애가 없더라도 누구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고 가족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돌볼 수 있는 시대, 단순히 복지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돌봄경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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