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이차전지 핵심 원료 중 하나인 흑연을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다.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는 지난 20일 ‘흑연 품목의 임시 수출 통제 조치 최적화 및 조정에 관한 공고’를 발표했다. 고순도·고강도·고밀도의 인조 흑연 재료와 제품, 천연 흑연 재료와 제품이 대상이다. 수출을 전면 통제한 건 아니지만 이들 품목은 12월부터 중국 상무부에 이어 국무원의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인조 흑연의 94%, 천연 흑연의 98%를 중국에 의존하는 국내 배터리 산업계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흑연은 양극재, 분리막, 전해질과 함께 이차전지 4대 소재인 음극재의 핵심 재료로, 중국이 세계 흑연 제련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과 음극재 제조업체 포스코퓨처엠의 흑연 보유 물량은 1.5개월분이라고 한다. 중국산 흑연을 대체할 수입처가 없다 보니 최악의 경우 국내 배터리 공장이 멈춰설 수도 있다. 지난 8월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로 수입이 한 달 이상 전면 중단되지 않았던가. 2년 전 요소수 사태의 악몽이 재연될까 봐 우려스럽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내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 노력의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국내 산업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큰 핵심광물 33종 중 3대 수입국 안에 중국이 포함된 게 25종이나 된다. 10대 전략 핵심 광물로 지정한 희토류 5종과 이차전지 핵심 소재의 대중 수입 의존도가 70~100%에 이른다. 수년 전부터 중국 의존에 대한 경고음이 나왔는데도 오히려 대중 수입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문제다. 일이 터진 뒤 허겁지겁 군용기를 호주로 보내 요소수를 들여오는 식의 땜질식 대응을 언제까지 할 텐가.
중국은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전방위 대중 규제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면서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배터리 산업의 공급망이 훼손되면 중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중국의 잇단 자원 무기화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공급망 위험성을 줄이려는 미국의 ‘디리스킹’ 전략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란 점도 강조해야 한다.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국산 배터리 장착 전기차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코미디 같은 상황도 이참에 재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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