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비수도권의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 상황에서 지역불균형 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역별 특화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23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산업역동성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지역내총생산(GRDP)이 위축되고 인구 유출 등으로 소멸 위기에 빠진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산업역동성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지역별로 특화된 혁신기업의 탄생과 성장, 글로벌 선도기업 유치 등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조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SGI는 “금융위기 전후 비수도권의 경제성장률과 인구 증가율을 계산한 결과 경제성장률은 2000~2007년 4.9%에서 2010~2021년 1.9%로 3%포인트 낮아졌으며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며 “수도권 지역도 금융위기 이후로 경제성장률과 인구증가율이 낮아졌으나 하락 폭은 비수도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아 지역 간 불균형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실제로 “국가첨단전략산업들인 반도체, 이차전지, 차세대 디스플레이 관련 글로벌 기업들이 소재한 평택·용인·화성·이천(반도체), 청주(이차전지), 천안·아산·파주(디스플레이) 등 지역은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대한상의 SGI 김천구 연구위원은 기업이 어떻게 지역의 성장을 일으키는지를 설명하며 “일차적으로 우수한 기업들이 지역에 설립되면 노동수요가 늘어나 인구 유입을 일으킨다”며 지역의 일자리 증가에 따른 주민들의 소득 증가는 “교육, 여가·스포츠, 숙박·음식업 등 또다른 수요를 창출해 지역에 인프라가 확대되고 새로운 서비스 일자리가 생겨나게 만든다”고 말했다.
SGI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기업들의 활력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살펴보기 위해 산업역동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산업역동성은 활동하는 기업 중 새로 생겨난 기업의 비율을 뜻하는 ‘신생률’과 사라진 기업을 의미하는 ‘소멸률’로 나타낸다. 분석 결과 신생률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부진한 현상이 관찰되며 소멸률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GI는 비수도권에서 생겨난 기업들이 고성장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신생기업 중 지난 3년간 매출액이 연평균 20% 이상 늘어난 기업을 뜻하는 ‘가젤기업’ 수는 수도권은 지난 10년간 약 400개(2011년 1586개→2021년 1986개) 늘어난 반면 비수도권은 2011년 1179개에서 2021년 1051개로 오히려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SGI는 창업의 구성면에서도 비수도권은 저부가 업종 비중이 높다고 지적했다.
비수도권에 창업하는 기업 중 정보통신, 금융보험, 전문과학기술 등 고부가 서비스업 비중은 2020년 기준 3.8%로 수도권의 8.0%와 비교해 크게 낮았다. 고부가 서비스업에 속한 기업들이 늘어나는 속도 역시 비수도권이 수도권보다 느리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업력이 짧은 젊은기업(young firm)은 업력이 오래된 성숙기업(mature firm)보다 일자리 창출이 활발한 특성이 있다”며 “비수도권 지역의 산업 역동성 하락과 제품 차별화가 어렵고 진입장벽 낮은 저부가 업종 위주 창업은 고용의 양과 질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경제환경이 변화하며 국내 산업구조도 달라질 것으로 보이는데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전략산업이 많이 입지한 수도권과 충청권은 괜찮지만 이들 지역을 제외한 곳에서는 앞으로 젊은 양질의 인력을 유인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으며 지역의 산업공동화 현상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역별 주력산업 분포 현황을 보면, 수도권은 반도체(80.7%)·무선통신기기(44.7%)·기계장비(42.5%), 충청권은 디스플레이(43.2%)·전기장비(31.2%), 대구경북은 철강(%), 부울경 지역은 조선(79.3%)·자동차(40.8%)·자동차부품(27.7%)·석유정제(47.5%), 호남은 석유화학(38.9%)이 많이 분포했다.
SGI는 “우리나라는 수도권으로 고부가 창업, 일자리의 양적·질적 증가, 교육·교통 등 인프라 집중이 심화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지대 상승, 물류 집중에 따른 혼잡비용 증가 등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에 몰리는 인력들은 과도한 집값 영향으로 생활 수준이 낮아지고 결혼·출산을 포기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보고서는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대규모 발전소는 주로 비수도권에 건설될 예정이고 지역주민의 갈등이 빈번한 장거리 송전망 확충이 필요하다”며 “전력자급률이 낮은 수도권 지역에 기업들이 계속 몰리면 송전탑·송전선로 건설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전력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 SGI 김천구 연구위원은 “현재 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하면 기업들은 각종 생산비용에 따른 수익성 저하로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수익성 악화로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기업들을 지역으로 이전시키고 탄소중립, 디지털전환 등 산업 패러다임 전환기에 알맞은 반도체, 그린 비즈니스, 첨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관련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지방소멸을 막고 국가 산업경쟁력 키우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SGI는 우선 “지역의 특색을 살린 차별화된 접근과 글로벌 기업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인센티브를 패키지로 제공해야 한다”며 “현재 국회에서 계류중인 ‘지방투자촉진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고서는 국회에서 지방투자촉진법 논의 과정에서 “국세·지방세는 물론 소득세·법인세 감면과 규제 특례를 지원하는 ‘기회발전특구’의 인센티브 수준을 보다 더 높여줄 것”은 물론 “수도권 구도심 공단 내 기업 중 지방 이전을 하고 싶어도 양도차익 관련 법인세로 주저하는 기업에 특구로 이전 시 양도차익 관련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첨단산업 리쇼어링 지원도 언급했다.
SGI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 자립화 추진, 반도체 기술 패권전쟁 등으로 해외에 진출해 있는 일부 중소 반도체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러한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 시 초기 몇 년간 법인세 인하, 부지확보에 필요한 비용 저리 대출 등 생산기지 이전에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해외 중소 반도체 등 기업의 생산시설 국내 이전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지방에 혁신형 창업생태계 구축할 필요성도 말했다.
SGI는 “기술혁신형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며 비수도권 창업 시 인센티브를 주고 있는 TIPS 등 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며 “비수도권 창업생태계에 벤처투자의 물꼬를 터주고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활동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박양수 대한상의 SGI 원장은 “우리 경제가 당면한 저출산·고령화, 산업경쟁력 강화, 지역균형 성장에 대한 통합적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SGI는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7월 취업자 고령화 현상을 분석했던 보고서에 이은 두 번째 결과물로 앞으로도 국가발전에 기여할 아이디어를 지속해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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