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새벽 소형 목선을 타고 강원도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순한 북한 주민 4명이 “우리는 배가 고파서 왔다”고 했다. 우리 어민의 신고로 해양경찰에 나포되면서 “너무 굶주렸다. 먹고 살기 위해 내려왔다”고 한 그들의 말은 북한 주민의 삶이 어느 정도 열악한지 알 수 있게 한다. 해상 탈북은 북한 주민 9명이 생활고로 어업용 목선을 타고 서해상으로 내려와 귀순한 이후 5개월 만이다. 동해상 귀순은 2019년 6월 남성 2명이 목선을 타고 삼척항으로 내려온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이번 탈북민들이 타고온 7.5m 길이의 목선은 4명이 타면 꽉 찰 정도라고 한다.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히거나 조난당할 우려가 큰데도 각오하고 탈북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들의 탈북은 윤석열정부가 전 정권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파됐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2019년 11월 귀순 어민 2명을 판문점을 통해 강제북송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탈북 사례는 눈에 띄게 줄었다. 새 정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올해 탈북자는 총 139명으로 작년(42명)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3분기에만 40명이다. 북·중·러 밀착으로 탈북자 단속이 강화된 것을 감안하면 동해 루트를 통한 귀순은 의미가 크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구금시설에 있던 600여명의 탈북자를 강제북송했다. 강제북송되면 대부분 정치범수용소로 가 모진 고문을 당한다. 한국행을 시도했거나 한국인·교회 등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면 즉결 처형된다고 한다. 아직 중국 변방대 등에는 1000명 안팎의 탈북자가 북송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 정부는 지난번처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주민에게 탈북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탈북 루트가 많은 것도 아니다. 중국이 탈북 브로커까지 단속을 강화하면서 이젠 태국·라오스의 탈북 경로까지 막혔다고 한다. 유엔보고서대로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추운 날씨가 본격화하면 탈북 러시를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고 사느니 차라리 죽을 각오로 남쪽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어민이 신고할 때까지 우리 당국은 뭐했느냐는 얘기를 들어선 안 될 것이다. 탈북자 급증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비책과 중국 내 탈북민 강제북송을 막을 대책을 새로 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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