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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사랑꾼' 한의사가 들려주는 우리말의 힘 [우리말 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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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30 09:00:00 수정 : 2023-11-16 14: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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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우리말 사랑 몸소 실천한 박계윤 장흥한의원 원장 인터뷰
국어는 한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밀려드는 외국어와 국적불명의 신조어, 줄임말 등에 국어가 치이고 있습니다. 특히 국민 누구나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할 정부와 지자체, 언론 등 공공(성)기관에서 사용하는 ‘공공언어’의 그늘도 짙습니다. 세계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국어문화원연합회와 함께 공공분야와 일상생활에서 쉬운 우리말을 되살리고 언어사용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우리말 화수분’ 연재를 시작합니다. 보물 같은 우리말이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명력을 지니도록 찾아 쓰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편집자주>

 

“단지 우리의 말과 글이어서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쉬운) 우리 말과 글을 쓰는 게 의사소통을 잘 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경제성과 효율성이 굉장히 높아요.”

 

한글문화연대가 올해 ‘우리말 사랑꾼’으로 선정한 박계윤(53) 장흥한의원 원장은 최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한글을 왜 소중히 여기고 잘 써야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 원장은 한의학 교과서, 약재 이름표, 환자 진료서 등에 한자로 된 어려운 한의학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 환자 등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지난 9일 한글날 577돌을 기린 한글문화연대 잔치에서 ‘우리말 사랑꾼’으로 선정된 박계윤(왼쪽) 장흥한의원 원장이 상패를 받은 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글문화연대 제공

박 원장이 한글에 애정을 쏟기 시작한 계기는 한의대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한의학 교과서는 한자로 가득했고, 높은 학점을 받으려면 보고서와 시험답안을 한자로 써야했어요. 이런 비효율적인 교육체계가 한의학 발전을 저해한다고 여겨 안타까웠습니다.” 한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학문을 익히는 수단인 문자에서부터 힘겨워한다면 한의학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2001년 고향인 전남 장흥에 한의원을 연 박 원장은 우리말을 쓰는 게 한의학과 한의원 운영 등에 얼마나 이로운지 직접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목공소에 약장을 주문하면서 약재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했더니 난감해 했어요. 약장 서랍에 글씨를 쓰는 서예가가 한글로는 써본 적이 없어서 쓸 자신이 없었던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약재 이름이 적히지 않은 약장을 주문한 뒤 한글로 된 약재 이름표를 붙였어요. 이름을 한글로 쓰니 가나다 순이라는 정렬기준을 가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쉽게 알아보고 편하게 약재를 찾아 쓸 수 있었습니다.”

 

한의원 직원들도 약재 이름이 한글로 적혀 있으니 누가 와도 수월하게 일을 볼 수 있었다.   

 

박 원장은 진료기록부에도 한의학 전문 용어 대신 환자가 전한 말 그대로 옮겨 적는다. 예컨대, 옛 한의사들은 무릎이 아픈 환자가 찾아와 ‘쑤시다’ ‘절리다’ ‘애리다’ ‘시큰거리다’ 등 각자 느끼는 통증을 다양하게 표현해도 간단하게 전문 용어로 ‘슬통(무릎 통증)’이라고만 적었다. 그러나 박 원장은 환자마다 표현하는 대로 기록했다.  

 

“앉아있다 일어날 때 무릎이 아픈디 옛날 같이 득신득신(욱신욱신) 애리지는 않습디다”, “체기는 많이 가셨는디 지금도 오목가슴이 잔(좀) 답답해요”, “다리에 힘이 없어서 포로시(겨우) 걸어왔소” 등 환자가 하는 말을 들리는 대로 적어 놓아야 환자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고 진료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재방문한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때 의사가 자기 용어로 바꿔 얘기하면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의사가 잘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의사가 전에 환자가 호소했던 대로 ‘저번에 이렇게 아프다고 하셨죠’라고 하면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통증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신뢰 측면에서 중요하고 진료 효율도 높아지는 거죠.”

 

박 원장은 “누군가의 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글을 가진 우리 민족 말고는 어느 나라도 이런(소리나는 대로 적는) 일을 우리처럼 잘하지 못한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글 배우는 게 너무 쉬워서 (한글) 귀한 줄 모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의원 안내문뿐 아니라 환자에게 설명할 때도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방법 등을 쉽게 잘 설명해줄수록 치료 효과가 훨씬 좋아진다는 판단에서다.

 

일례로 허리와 다리가 아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리가 저리고 땅기는 건 허리 때문입니다. 몸을 세워주는 근육을 쓰지 않으니 뱃심이 점점 떨어지고 뼈로만 몸무게가 쏠려서 물렁뼈가 버티질 못한 겁니다. 흔히 ‘디스크’라고 하는 병이에요. 몸을 세워주는 근육을 키워줘야 나을 수 있습니다. 몸을 세워주는 근육은 가슴을 펴고 몸을 바로 세울 때 키워집니다. 힘들어도 배근육을 써 몸을 자꾸 세워주셔야 허리가 튼튼해집니다.”

 

‘우리말 사랑꾼’ 한의사의 바람은 뭘까. 박 원장은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행정·법률용어와 공공기관의 각종 문서와 정책 자료, 언론보도 등 최소한 공공언어 차원에서는 중학생 이상만 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과 문장으로 다듬어 썼으면 한다”며 “그러면 전체 국정 효율도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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