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시작된다. 657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간 격돌이 예상된다. 정부와 여당은 예산안이 재정 건전화와 약자 복지 강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원안 통과를 주장한다. 반면 야당은 ‘국민 포기’ 예산이라며 정부가 삭감한 연구개발(R&D), 지역사랑상품권,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을 복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견이 커 법정시한(12월2일)은 물론 정기국회 내(12월9일) 통과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9일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강행처리할 예정이다.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맞설 방침이나 다수 의석을 앞세운 야당의 힘에 밀릴 거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면 정국은 얼어붙고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 정쟁에 예산 심의가 뒷전이 될 경우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지출과 불요불급한 예산이 제대로 걸러질지 우려스럽다. 그 틈을 타 민원성 쪽지예산 끼워넣기와 여야 간 짬짜미 주고받기도 재연돼 졸속 예산안 심사로 전락할 게 뻔하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맹탕 국감’이라는 오명을 쓰고 지난 27일 막을 내렸다. 의원들 열의가 없다 보니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국감은 오간 데 없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 기존 논쟁거리를 재탕해 고성이 난무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했다. 심지어 국감 마지막 날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감에서는 중국이 최근 탈북민을 대거 강제 북송한 것을 두고 여야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쟁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얘기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국민들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국정감사가 ‘성과가 있었다’는 것은 15%에 불과했고, 반대로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는 49%로 집계됐다. 임기가 6개월 정도 남은 21대 국회가 ‘활동을 잘했다’는 평가는 고작 13%에 불과했다. 예산 심의마저 이런 평가를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정기국회는 예산국회이며 예산은 민생과 직결된다. 여야는 정치혐오감만 키우는 정쟁에 몰두해 예산심의 직무까지 방기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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