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부정 극우인사 햐쿠타가 대표
성적소수자법·왕실전범 개정 등 주장
유권자 7% 정도가 호감이나 흥미 가져
보수성향 세력과 연합 땐 파괴력 예고
참의원 배출 참정당과 제휴 여부 주목
헌법 개정 통한 군사대국 열망 공통점
일본유신회·감세일본과도 접점 지녀
햐쿠타 “성소수자법에 화나 창당” 밝혀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도 반발 나와
LGBT법 원안 크게 바뀌어 국회 통과
지난달 17일 일본에서 우익 색깔이 농후한 또 하나의 정당 ‘일본보수당’이 출범을 알렸다. ‘반(反)자민당’, ‘강한 일본’의 기치를 내세운 이 당의 공략 타깃은 이름 그대로 보수층이다. 겨우 한 달 된 신생 정당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정치세력과 협력 여부에 따라 보수화 추세가 강한 일본에서 향후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극우성향 유명 작가, 신생정당 설립
지난달 21일 도쿄 아키하바라역 인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연단의 햐쿠타 나오키 일본보수당 대표에게 쏠렸다.
햐쿠타 대표는 제2차세계대전 중 일본군 조종사의 삶을 그린 베스트셀러 ‘영원의 제로(2차대전 때 일본 함상 전투기 이름)’ 작가이자 “위안부는 역사적인 날조”라거나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는 등의 망언을 일삼은 극우 인사다.
닷새 전인 17일 설립된 신생 정당의 이날 첫 가두집회는 예상밖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민당, 공명당 연립정권은 이미 최악이다. 왜 자민당 정권이 형편없는가. 이유는 산처럼 많다”는 그의 말에 일부 청중은 “그렇다”고 소리 지르며 동감하거나 “힘내라”라는 응원을 보냈다.
일본보수당의 대표 공약은 성적소수자(LGBT)이해증진법과 왕실전범 개정 등을 통한 ‘일본 국체(國體)·전통문화 보호’, 전쟁 포기, 교전권 불인정 등을 담은 헌법 개정, 감세를 통한 국민부담 경감, 자유·민주주의·인권 등에 기초한 가치관 외교 등이다.
햐쿠타 대표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표를 주고 싶은 후보자가 없다’는 목소리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일본보수당이 생겨 이제야 투표장에 갈 수 있다’는 목소리가 굉장히 크다고 느끼고 있다”며 세력 확장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리모토 가오리 당 사무총장은 “일본을 보다 강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걸 새로운 정치인이 일본보수당에서 나올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보수층 공략 합종연횡 가능할까
일본보수당의 인지도나 지지율은 아직 의미 있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창당 다음날 데이터베이스사이트 ‘센쿄(選擧)닷컴’이 공개한 인터넷 조사에서 일본보수당에 호감이나 흥미를 가진 유권자는 7%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지난달 말 기준 일본보수당 당원은 5만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은 온라인을 통한 세 확장에 주력할 계획인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옛 트위터) 팔로어가 기반이다.
다만 비슷한 성향의 다른 정치 세력과 연합해 보수층을 공략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일단 2020년 창당해 지난해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의원 1명을 배출한 참정당과의 협력 여부가 주목을 끌고 있다.
두 당은 닮은 데가 많다. 자민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투표하고 싶은 정당이 없다면 스스로 만들자”는 참정당의 구호나 “자민·공명 연립정권은 이미 최악”이라는 일본보수당의 일성은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튜브나 SNS를 기반으로 우익적 색깔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같다.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일본보수당), 전수방위(상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무력을 행사한다는 일본 방위 원칙)을 부정(참정당)한다는 점에서 양당 모두 ‘군사대국 일본’에 대한 열망이 보인다. 왕실을 일본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근간으로 강조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가미야 소헤이 참정당 대표는 지난달 25일 열린 국회 정례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정당이 생기면 정치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며 “(일본보수당과) 협력해 가면서 일본이 보다 좋아지도록 함께 노력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자민당 간부는 요미우리신문에 참정당이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선전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일본보수당으로도 지지층이 갈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보수당의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린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도 눈길을 끈다. 1993∼2009년 다섯 번에 걸쳐 중의원을 지낸 가와무라 시장은 자신이 이끄는 아이치현 기반의 지역정당 감세일본(減稅日本)과 일본보수당을 ‘특별우당(友黨)관계’로 설정했다.
그는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햐쿠타 대표와 함께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전국에서 적어도 30명의 후보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 우경화의 또 다른 신호일까
일본보수당의 등장은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결과로 재차 확인된 일본 우경화의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참정당의 원내 진출은 당시 특히 시선을 끌었다. 대화혼(大和魂·일본민족혼) 부활, 일본인 자존심을 고양하는 역사교육 실시, 외국인 배척 등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음모론 및 마스크 착용까지 주장했던 참정당이 받은 176만표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도쿄신문은 “정부와 거대 정당을 동시에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치에 불만이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2015년 오사카 지역정당으로 창당해 꾸준히 세력을 넓혀온 일본유신회는 그해 7월 선거에서 12석을 새로 확보해 참의원 전체 의석을 이전보다 6석 많은 21석으로 늘려 주요 정당으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유신회는 자위대 헌법 명기를 주장하는 개헌 세력의 한 축이다.
반면 진보적 성향의 정당은 존재감은 한껏 낮아졌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참의원 39석으로 선거 전보다 6석 줄었다. 1995년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를 배출한 사민당은 참정당보다 적은 125만표를 받는 데 그쳤다.
◆‘LGBT이해증진법’에 日 보수층 거부감
“성소수자(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이해증진법에 화가 났다.”
햐쿠타 나오키 일본보수당 대표가 밝힌 창당 계기다.
지난 6월 LGBT법 국회 통과,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최근 일본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지만 이처럼 보수층은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LGBT법은 성적 지향·성 정체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부나 공공단체의 역할 등을 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성소수자에 대한 일본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지만 국회 통과까지의 과정에서는 뿌리 깊은 반감이 드러났다.
일본 국회에서 LGBT법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도출된 건 2년 전이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는 필요 없다는 의견이 강했고, 국회 통과를 위한 논의는 계속 미뤄졌다.
변화가 생긴 것이 올해 2월이다. 5월 히로시마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도 성소수자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보수층을 의식하면서 LGBT법은 원안에서 크게 바뀌었다. 성소수자 교육과 관련된 내용에 “가정 및 지역주민, 그 외 관계자의 협력을 얻어”라는 단서를 추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교육을 권장하는 게 아니라 제동을 걸기 위한 것”, “오히려 차별을 조장할 것”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성소수자의 권리, 인권을 옹호하는 취지의 판결이 잇달아 나오는 것에도 보수층의 경계심이 크다. 최고재판소는 지난 7월 성전환 공무원의 여성 화장실 제한은 위법하다고 판결했고, 지난달에는 성전환 수술을 해야만 성별 변경이 가능하도록 한 현행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