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에 한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려던 계획이 꼬이고 있다. 주택법 개정안의 12월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지면서 시장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1월 정부는 주택시장의 경착륙 조짐이 보이자 규제 완화 차원에서 분양가 상한제 주택 청약 당첨자의 2∼5년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공언했다. 주택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2021년 2월 도입한 청약 당첨자의 실거주 의무를 면제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여야는 지난달 두 차례 국토법안소위에서 합의에 실패했다. 지난 6일 법안소위에는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않았다. 선거가 임박한 내년으로 넘어가면 유야무야되면서 법안이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 직무 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은 실거주 의무가 ‘주택공급 위축·주거 이전 자유 침해’라며 폐지하자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만 지난달 기준으로 72개 단지 4만7000여 가구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 발표만 믿고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려던 사람들과 자녀교육·직장 문제 등으로 당장 이사가 힘든 사람들이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기존 집 전세계약을 연장한 사람들은 계약을 파기하고 새 집에 입주해야 할 판이다. 실거주 의무를 위반하면 최대 징역 1년 혹은 1000만원의 벌금 처분을 받을 수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일부 아파트 소유주는 “벌금을 내더라도 전세를 놓겠다”고 하는 지경이다.
정부는 지난 4월 시행령 개정으로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을 완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거주 의무가 유지되면 전매 제한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여소야대 정치 지형을 간과한 정부 잘못도 크다. 국회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서민주거 안정’이라는 대의 앞에 정치 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아파트들 청약 당첨자들은 대부분 무주택자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새 집을 전세 주고 보증금으로 분양 대금을 치러야 한다. 갭투자 우려가 없진 않지만 야당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져보면 실거주 의무는 직접 거주하는 한 채 이외의 주택은 투기로 보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일말의 부작용 우려 때문에 서민들의 주거 안정과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외면해선 안 된다. 선량한 서민들을 범법자로 내모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야는 서둘러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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