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하지 않는 한 괜찮다”라는 말에 투자한 고객만 고통
5대 시중은행이 초고위험 투자상품으로 분류되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90대 이상 초고령층에게도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완전판매’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2020~2021년 라임·옵티머스 사태 이후 금융권은 불완전판매를 근절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실제로는 바뀐 게 없었던 셈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괜찮다”는 말을 듣고 투자한 고객들만 고통받는 상황이 됐다.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90대 이상 고객 홍콩H지수 연계 ELS 편입 주가연계신탁(ELT)·주가연계펀드(ELF) 잔액은 90억8000만원이다. 범위를 60대 이상 고객으로 넓히면 이들의 판매 잔액은 6조4541억원(47.5%)이나 된다. 초고위험 투자상품에 가입한 2명 중 1명은 60대 이상 고령이었던 셈이다.
고령층이 복잡한 투자상품 구조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금융권이 이들에게 불완전판매를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달 초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ELS 상품 구조에 대해 파는 사람조차도 어떤 상품인지 모르고 판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부분을 조사해서 불완전판매인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완전판매는 금융권의 단골 골칫거리다. 2019년엔 독일·영국·미국의 채권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를 편입한 DLF가 문제가 됐다. 이들 국가 금리가 예상과 달리 급락하면서 약정된 조건대로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해 고객들이 큰 손실을 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2019년 10월 DLF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5건 중 1건에서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20~2021년엔 라임·옵티머스 펀드가 불완전판매 의혹의 중심에 섰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피해자모임’ 카페의 한 투자자는 당시 카페에 “주택을 살 목적으로 3개월 정기예금에 가입하고자 했다”며 “은행에서 정기예금보다 이율이 높고 확실하다며 6개월 만기로 (사모펀드를 추천해) 가입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투자자 역시 “펀드는 절대 안 한다고 했는데도 PB가 펀드가 아니라 매출채권이고 보험에 가입돼 운용사가 잘못되더라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해서 가입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미 ELS 불완전판매 관련 배상기준안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내년 초 만기가 도래하고 손실 확정이 본격화될 경우 신속한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하기 위해서다. 이번 H지수 ELS 분쟁조정에 대해 배상기준안 방식이 적용되면 이는 DLF·사모펀드 사태 이후 두 번째다. 금감원은 DLF·라임·옵티머스 불완전판매와 관련해선 손해액의 40~80%를 배상하도록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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