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주들 “생계 위협” 토로…면책사례 3% 불과
당정 “보호 장치 마련”…6개 법률개정안 발의
“갓 제대한 군인이라는 거짓말 믿은 잘못으로 당분간 영업 정지합니다. 미성년자들아, 너희 덕분에 5명의 가장이 생계를 잃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한 콩나물국밥집은 지난해 11월 청소년에게 속아 주류를 판매했다가 올해 7월 영업을 정지당했다. 업주는 영업정지 당시 가게 밖에 “거짓말을 하고 처벌도 받지 않은 미성년자들아. 지금은 철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없겠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서 진짜 어른이 된 후에 너희가 저지른 잘못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문을 내걸었다. 해당 국밥집 관계자는 “60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지난 9월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며 “가게가 쉬는 사이 몇몇 직원들은 그만둬야 했다”고 전했다.
최근 식당에서 성인인척 하는 학생들에게 속아 술을 팔았다 영업정지를 당하는 사장들의 사연이 꾸준히 전해지며 공분을 사는 가운데, 이런 억울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구제하기 위한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31일 법제처에 따르면 구매자 나이 확인과 관련된 사업자의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청소년 보호법 등 6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앞서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입법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은 나이 확인을 요청받은 사람이 이에 협조해야 하는 의무 규정을 명문화했다. 공연법이나 음악산업진흥법 등 4개 법률에는 구매자 등이 신분 확인에 협조하지 않았거나, 신분증 제시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경우 영업장 출입이나 물건구매 등을 제한하는 근거를 명시했다. 특히 공중위생관리법 등 4개 법률에는 청소년이 위·변조 혹은 도용한 신분증을 사용했거나 폭행·협박 등으로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 영업정지 등 사업자에 대한 제재 처분을 면제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다.
콩나물국밥집처럼 청소년에게 속아 술을 판매해 영업정지 등 불이익을 당하는 자영업자들은 매년 꾸준히 발생하는 추세다. 실제 최근 3년간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해 적발되는 사례는 약 7000건에 달하며 매년 적발 건수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17개 시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해 적발된 건수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6959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1648건에서 2022년 1943건으로 늘었으며 2023년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구매자는 처벌하지 않고 판매자만 처벌한다”며 제도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런 허점을 악용해 청소년들이 술값을 내지 않고 ‘먹튀’하거나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며 ‘보복’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인천에선 주류를 포함해 16만원어치를 먹어놓곤 “신고하면 영업정지인데 그냥 가겠다”는 메모만 남기고 달아난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지난 성탄절 연휴엔 성인인 척하는 미성년자에게 14만원어치 술과 음식을 팔았다 그 부모에 고소까지 당했다는 사연이 온라인상에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업주는 “여자 손님 2명이 착석했는데, 염색한 긴 생머리가 가슴까지 내려오고, 화장을 하고 핸드백까지 들어 스무 살이 넘은 줄 알았다”며 “별안간 이 손님의 부모들이 전화해 온갖 욕을 퍼붓고 고소까지 했다. 영업정지 처분과 과징금은 저와 직원들, 아르바이트생들 생계까지 위협한다. 왜 유해하다는 미성년자 술·담배에 대한 처벌이 판매자에게만 있고 구매자인 청소년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없느냐”고 토로했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청소년에게 주류를 제공하면 1차 적발 시 영업정지 60일 등 행정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신분증 위·변조, 도용 등으로 청소년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행정처분을 면제해주는 내용의 구제 조항도 있으나, 대다수 피해는 업주가 떠안고 있다. 행정처분 면제 사례는 2020~2022년 194건으로 전체 적발건수 대비 약 2.8%에 불과했다.
법률 개정안을 통해 이같이 그간 일부 법률에만 있던 제재 처분 면책 근거를 나이 확인이 필요한 영업 전반으로 확대했다는 게 법제처 설명이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이번 법률 개정은 민생과 직결되는 사항”이라며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법제처도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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