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그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를 승인했다. 가상화폐의 가치변동에 따른 투자가 가능해지고 음지에 머물던 가상화폐가 제도권 내 주류 금융시장으로 편입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비트코인은 가상화폐거래소뿐만 아니라 ETF 상품을 통해 주식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게 됐다. 높은 수수료가 낮아지고 지갑이 해킹당할 위험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제도 시장 내 금융거래라는 안전장치에다 국가 지원은 덤이다. 신규 자금 유입과 가격 상승이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대형 은행 스탠다드차타드(SC)가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 올해만 최대 1000억달러(131조원)가 유입될 것”이라고 분석했을 정도다.
물론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승인했다고 해서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자산운용사 등을 통해 당장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투자업자는 현행 자본시장법에 명시된 투자 허용 상품들만 판매할 수 있는데, 가상자산은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금융당국도 현재 제도화에 반대해 국내 자본시장에 현물 ETF 상품이 출시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금액은 3조원, 이용자는 627만명에 달했다. 현물 ETF 승인에 편승한 해외 가상화폐거래소 이용자들이 대거 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다시 고개를 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가상화폐 ‘위믹스’의 상장폐지를 경험한 게 얼마 전이다.
그런데도 관리 감독은 허술하다. 국회는 오는 7월 시행되는 초보적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만 입법화했을 뿐이다. 지난 9일에야 금융위원회가 가상자산 거래 제도화의 주요 쟁점을 다룬 가상자산 입법에 관한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해 논의가 시작됐을 정도다. 가상자산 거래의 사업자 범위·유통·산업 육성 등을 포괄하는 관련법 제정은 2∼3년 뒤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가상자산 소득세율을 기존 55%에서 20%로 낮추기로 한 일본이나, 대체불가토큰(NFT) 거래소를 출범시킨 중국과도 비교된다. 어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SEC가 ETF 상장을 승인한 것을 두고 “비트코인이 하나의 투자자산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더 이상 관련 입법 제정을 늦춰선 안 된다는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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