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게임의 룰’인 선거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수개월째 당론조차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제1당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어제도 의원총회를 열었으나 비례대표 선거제 문제는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한때 병립형 회귀로 기울다 위성정당을 허용하는 현행 준연동형 유지로 선회했던 민주당은 다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권역별 비례제)를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원칙과 명분은 제쳐놓고 의석수 확보에 가장 유리한 방식만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권역별 비례제는 2016년 총선 당시의 병립형으로 회귀하되,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따로 뽑고 소수 정당에는 일정 의석을 보장해 주자는 구상이다.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내놓은 안은 전국을 수도권, 중부권, 남부권 3권역으로 나눠 병립형을 적용하되 비례의석 47석 중 30%(15석)를 소수 정당 몫으로 보장한다. 권역별 비례제에서는 민주당이 소수 정당과 단일 비례연합정당을 만드는 것보다 독자적으로 비례 의석을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게 된다.
병립형 회귀를 당론으로 정했던 국민의힘도 민주당이 권역별 비례제를 검토하는 것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이 준연동제를 완전히 포기하면 얼마든지 권역별 비례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신당의 의석 잠식을 우려한 것이다. 두 거대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 주변 소수 정당은 극력 반대하고 있다. 21대 총선보다 자신들 몫 의석이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쌍특검(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대장동 50억 클럽) 재표결을 위해 군소 정당의 힘을 빌려야 하는 민주당이 다시 주춤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선 때 ‘위성정당 금지’와 준연동형 유지를 약속했으나, 얼마 전에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냐”며 병립형 회귀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당 원로그룹과 소수 정당 반발이 작지 않자 현행 제도 유지 가능성을 내비쳤다가 다시 “선거는 자선사업이 아니다”(정청래 최고위원)라며 권역별 비례제를 들고 나왔다. 최악의 경우 협상 시한에 쫓기면 위성정당이 난립한 4년 전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 이 혼선을 끝내려면 민주당이 더 이상 식언을 일삼으며 잇속만 챙기려 해서는 안 된다. 선거는 이미 시작됐는데 내부에서조차 의견 조정을 못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