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어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유예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법이 확대 적용된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50인 미만 중소·영세업체들이 안전관리 체계 등의 미비를 들며 시행을 2년 더 유예해 달라고 호소해 만든 법이다. 이에 따라 이 법을 지켜야 하는 현장에선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4·10 총선을 앞두고 양대 노총과 노동계의 눈치를 본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크지만 국민의힘과 정부도 야당에 대한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초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사고 예방 효과는 별로 없고 외려 사망 등 중대사고가 늘어난 통계가 잇따르면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안 통과의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이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을 들고 나왔으니 합의가 되는 게 더 이상할지 모른다. 산업안전보건청을 신설하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개정안을 처리할 생각이 없다는 뜻과 다름 아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사고 발생 시 사업주 등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내게 된다. 이는 5인 이상 동네 마트, 식당·치킨집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업체들이 준비가 돼 있느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50인 미만 1053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94%가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중대재해법에는 안전담당 인력을 반드시 두도록 규정돼 있는데, 이게 가능한 50인 미만 업체가 몇이나 되겠나. 영세사업장 업주가 처벌받으면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을 우려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영세사업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처리해 달라”고 강조한 이유다. 민생을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여야는 내달 1일 본회의에선 유예안이 처리되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와는 달리 여야는 8조7000억원이 드는 달빛고속철도(대구∼광주) 건설 특별법은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논의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신속 예타’라도 거쳐야 한다고 한 사업인데도 여야가 ‘짬짜미’한 것이다. 총선에서 표가 된다면 경제성이 있는지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여야엔 표만 보이고, 83만여개 중소·영세사업장의 절규는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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