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권리행사방해죄 인정 안 해
박근혜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엄격히 해석 무죄 판단
2월 임종헌 前 차장 1심 선고 주목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과거 쟁점이 유사했던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관심이 쏠린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는 재판 개입 등 주요 혐의에 대해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은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해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다”거나 “설령 그런 직무권한이 있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사법농단’으로도 불린 이번 사건의 1심 결론은 과거 ‘국정농단’ 재판을 소환하고 있다. 국정농단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상고심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에 대해 최종 무죄 판단을 받았다. 당시 쟁점은 박 전 대통령의 문화예술인 배제 지시가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인지였다. 재판부는 문체부 공무원의 요청으로 산하기관이 지원산업 신청자 명단을 보내고 심의상황을 보고한 것이 ‘의무없는 일’이라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한국관광공사 자회사(GKL)에 펜싱팀 창단을 요구한 부분을 비롯한 일부에 대해선 직권남용죄가 인정됐다.
국정농단 재판을 통해 대법원은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는 구성요건을 처음으로 제시했고, 이후 법원은 이런 판결 취지를 반영해 각각의 조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왔다. 직권남용죄를 인정하기 위해선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하는지 △해당 직권이 남용됐는지 △남용을 통해 의무없는 일이나 권리행사를 방해했는지를 차례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직권남용죄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입법 취지를 고려해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경우 공무원에 대한 고소·고발이 남용돼 적극행정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일부 고위 인사의 직권남용죄가 인정된 것처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서도 실무를 담당한 일부 법관에 대해 유죄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은 2심까지 일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상태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부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일부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다음달 5일 예정된 임 전 차장 1심 선고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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