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 충분히 돕고 있는지 자문해보길"
바이든과의 정상회의 앞두고 유럽 군기 잡기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독일 홀로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게 우크라이나 지원을 늘릴 것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해 주목된다. 독일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고 EU 역내에선 경제 규모가 가장 크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EU 회원국들이 독일에 모든 책임을 떠민다면 묵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숄츠 총리가 사실상 EU의 최대 주주로서 회원국들 군기 잡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숄츠 총리는 전날 EU 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많은 EU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을 돕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고 다그쳤다. 이어 “EU 회원국들 정부 스스로가 ‘우리는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충분히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의 경우 대답은 ‘아니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책임을 독일한테만 떠넘기지 말라는 경고로 풀이된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후 전쟁이 2년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서방 국가들은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대의(大義) 아래 무기와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해 온 유럽 국가들은 차츰 발을 빼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가 야심차게 개시한 대반격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뒤 그런 경향은 더욱 짙어졌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설상가상으로 그간 가장 많은 무기와 장비를 제공해 온 미국의 원조마저 끊길 판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편성한 대규모 예산안이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탄 등을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우크라이나군은 요즘 무기고가 텅텅 비어 가고 있다.
사정이 이런 가운데 오는 9일 숄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가장 중요한 의제는 역시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이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여소야대 의회의 반대로 미국이 우크라이나 원조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솔직히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제 독일을 비롯한 EU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경제력을 가진 나라다.
EU 회원국들의 더 많은 기여를 촉구한 숄츠 총리의 발언은 예상되는 미국의 요구를 대신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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