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 아시아아트출판연구소(AAPLab)에서 지난달 22∼24일 개최한 한류에 대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 K팝이나 K드라마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것은 입구에 불과했다. 학자들은 식민지 시대 조선영화, 화가 김환기나 윤형근, 새만금 개발을 다룬 다큐멘터리, 한국 드라마 속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연구들은 한국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빌보드 차트에 오르거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소수 콘텐츠의 화려한 면모와 그것의 산업적이고 국가적인 경쟁력만을 강조하는 피상적인 한류에 대한 접근과는 달랐다. 한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관심으로 확장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문화를 넘어 순수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한류의 영향력을 보고 있자니 한국 내의 한류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의 재고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술대회의 마지막 행사는 비디오 아트와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이었다. 캐나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캐나다인 작가와 한국 출신 입양인의 작품, 북미의 차이나타운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품이었다. 처음엔 이들의 작품이 한류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작품들을 보고 나니 한류의 문화적 힘이란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경계,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 다른 국가 및 민족들과 상호문화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열어젖히고 연결하는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일 한류의 이러한 의미를 도외시하고 상품으로만 간주할 경우, 그것은 그저 잠깐 반짝하고 지나가는 유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류의 진정한 힘, 즉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로 우리를 열어젖혀서 우리를 그들과 연결하고 그들과의 공통된 관심사를 함께 모색해 나가고, 보다 나은 세상을 함께 꿈꿀 수 있게 하는 힘을 알게 했다.
한국에서 주로 다루는 바와 달리, 한류는 그저 한국의 ‘외화벌이’나 ‘소프트 파워’가 아니다. 한류를 성공적인 문화상품으로 추켜세우거나 반대로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깎아내리는 것 모두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인 한류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지금 당장 만들어지고 있는 변화들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 그것이 한류, 그리고 한류를 논하는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자세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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