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과대학 김정은 학장이 그제 학위수여식에서 “지금 의료계는 국민들에게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며 “의사가 사회적으로 숭고한 직업으로 인정받으려면 경제적 수준이 높은 직업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 돼야 한다”고 했다. “세상을 치료하는 의사,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뚜렷한 책임감을 가진 의사, 사회적 책무성을 위해 희생하는 의사가 될 때 국민들의 신뢰 속에서 우리나라 미래·의료 의학계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도 했다.
김 학장의 말이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전공의들이 이와는 배치되는 행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7일 현재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9937명, 근무지 이탈자는 8992명이다. “29일까지 복귀하라”는 정부의 명령에도 의료현장으로 돌아온 전공의는 극소수다. 서울의 경우 서울아산병원 등 빅5병원은 수술을 50% 수준으로 줄이고 있지만 열흘 가까운 의료공백을 메우느라 의료진이 이젠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을 정도다. 부산과 대전에선 환자수용거부로 인한 ‘응급실 뺑뺑이’가 여전한 실정이다. 26일 오전까지 두 지역에서 각각 42건, 23건의 구급대 지연이송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교수와 전문의, PA(진료지원인력) 간호사 등이 의료공백을 메우지만 점점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내주 큰 고비를 맞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내달 3일 총궐기대회 참여를 권유하면서 “이번에 정부를 이기지 못하면 영원한 염전노예로 전락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이런 표현은 환자와 국민의 부아를 돋우고 의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키울 뿐이라는 것을 의사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어제 복귀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 수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다시 밝혔다. 어제부터 정부명령 송달효력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전공의 대표자 등의 집에 직접 찾아가 업무개시 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국민 절대다수가 부정적이다. 창구라도 일원화해서 정부와 대화하려는 자세를 취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김 학장의 말처럼 ‘의사의 책무’에 공감한다면 신속히 환자 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국민 건강 및 생명 보호가 아닌 경제적 수준이 높은 직업으로 의사직을 택한 집단으로 비칠 것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