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싹트기 전 6.5도가 최적”
기후변화로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사과와 같은 과실 재배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4월5일인 ‘식목(植木)일’ 날짜를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식목일이 제정된 약 80년 전보다 크게 오른 4월 기온이 나무를 심기에 적절하지 않아서다. 정부는 식목일의 역사성과 상징성 등을 이유로 날짜 변경에 신중한 모습이다.
3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평균기온은 13.1도를 기록했다. 직전 연도인 2022년 4월은 13.8도로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기온을 나타냈다. 4월5일 서울 지역의 평균기온을 살펴보면 1940∼1949년에는 7.58도였는데 지난해엔 11.9도로 4도 넘게 올랐다.
70여년간 기후변화로 4월 기온이 크게 올랐지만, 식목일 날짜는 변함없이 4월5일이다. 식목일은 미 군정청이 해방 이후 1946년 제정했는데, 24절기 중 날이 가장 맑은 청명(淸明) 무렵이라는 점이 그 이유였다. 그만큼 날씨가 식목일 제정에 큰 영향을 줬다는 의미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묘목을 심기에 적당한 기온을 6.5도로 보고 있다. 싹이 트기 전에 나무를 옮겨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전국 평균기온은 6.9도로, 국립산림과학원의 기준에 가깝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실장을 지낸 박형순 정원관리연구소장은 “나무는 뿌리가 활동하기 전에 옮겨 심는 게 안전하다”며 “잎이 나오기 시작하면 뿌리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묘목을 옮겨 심을 때 뿌리가 다쳐 생육에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미 식목일보다 이른 3월 무렵부터 나무 심기 행사를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다. 경기 화성시는 지난달 27일, 충남 당진시는 같은 달 28일 나무 심기 행사를 열었다.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강원도 이보다 앞선 지난달 20일 관련 행사를 시작했다. 서울환경연합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2010년부터 ‘온난화 식목일’을 만들어 3월에 나무 심기 행사를 이어 가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사과나 배와 같은 과실 재배가 어려워지면서 국내 과실 생태계가 급변한 점도 식목일 조정의 근거로 꼽힌다.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보면 봄철 평균기온 상승으로 수목 147종의 평균 개화 시기가 50년 전(1968∼1975년)과 비교해 8일 빨라졌다. 고로쇠나무와 대추나무, 모감주나무, 모과나무는 10일 이상 빨리 개화했다. 최근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사과의 경우 대표 산지가 대구·경북 청송에서 강원으로 북상했고, 키위나 올리브, 망고 등 아열대 작물 농가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식목일을 ‘세계 산림의 날’인 3월21일로 바꾸는 내용의 법 개정안도 2022년 말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 소장은 “기후변화에 맞춰 식목일 날짜를 앞당기는 게 타당해 보인다”며 “기념일에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직접 나무를 심어 보는 게 식목일 의미에도 걸맞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도 식목일을 3월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변경은 망설이고 있다. 지역마다 적정 식목 시기가 다르고, 4월5일이라는 식목일의 역사성과 상징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나무 심는 시기는 기온 상승만 보는 것이 아니고 수목 생리적 요인, 토양, 습도, 강수량 등과도 연관이 있다”며 “나무 심기 추진 기간은 제주나 남해안에서는 2월 하순부터 (시작하고), 경기와 강원에서는 4월 하순까지 심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차례에 걸친 국민 인식 조사에서는 ‘3월 식목일’ 찬성률이 1차 56%, 2차 57%로 절반을 넘었지만 반대를 압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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