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정원 2000명 최대 절반 줄 듯
의료계 대화 나서고 현장 복귀하길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가 애초 2000명에서 최대 절반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어제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전향적으로 수용해 내년도에 한해 의대 증원 자율조정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6개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들은 배정받은 의대 증원분의 50∼100% 안에서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립대도 50%씩 정원 규모를 줄일 의사가 있다고 한다. 정부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전격 수용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두 달여 간 이어진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을 해소하는 전기로 삼기 바란다.
증원 자율조정은 파국을 피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당장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더 이어질 경우 출석 일수 부족 탓에 다음 달 유급사태를 피할 길이 없다. 또한 한 달 전 의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오는 25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이들마저 대학병원을 떠나면 의료 대란이 현실화할 수 있다. 대학들 역시 이달 말까지 내년 모집인원과 전형방법 등 입시계획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해야 하는데 갈피를 잡지 못해 좌불안석이다.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5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의대 정원이 확정되지 않으니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간다.
의료 현장은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다. 부산과 경남 김해, 충북 보은에서 환자가 구급차 뺑뺑이를 돌다 숨지는 등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16일 경남 함안에선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20대 남성이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300㎞ 떨어진 경기 수원의 아주대병원까지 이송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구급대원이 외상센터와 대학병원 48곳에 연락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니 한숨이 절로 난다.
정부가 의대 증원의 자율조정을 허용했지만 의료계는 요지부동이다. 대한의사협회와 교수단체들은 “의대 증원 정책이 주먹구구식이었던 걸 보여 주는 방증”(의협 차기 회장), “허수아비 총장들을 들러리 세웠다”며 냉소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전공의 단체도 증원 백지화 없이는 병원에 복귀할 수 없다고 버틴다. 이도 모자라 일부 의대생들은 동료의 휴학을 강요하거나 수업 복귀를 막기 위해 시험에 필요한 족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왕따시키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벌어진다. 국민 생명과 건강은 아예 안중에 없다. 의료계 전반에 ‘정부가 백기 투항해야 한다’는 오만이 팽배한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제 의·정 갈등을 끝내야 할 때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전향적 입장을 표명한 만큼 의협과 전공의 단체도 증원 백지화만 고집할 게 아니라 열린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다음 주 사회적 협의체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 특위를 출범할 예정이고 야당도 국회 차원의 공론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특위든, 협의체든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 전공의들은 지금이라도 환자 곁으로 복귀해 진료에 매진하면서 의료개혁에 관한 합리적 의견을 개진하는 게 옳다. 정부도 진정성 있는 태도로 의료계를 끝까지 설득하기 바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