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년 대비 양파 31%·당근 44% 올라
커피·카카오·설탕 원재료 수입가 상승
빵·과자 등 먹거리 가격 인상도 불가피
중동발 리스크에 국제유가까지 불안
정부 내세운 ‘3월 정점론’도 물 건너가
“당분간 물가 2%대 진입은 어려울 듯”
‘금(金)사과’ 시름을 덜고 보니 김, 배추, 기름까지….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1분기 내내 고물가의 ‘상징’이었던 사과값이 하락 안정세를 보이자 이번에는 김, 배추, 카카오, 설탕 등의 가격이 치솟고 있다. 심상치 않은 국제유가로 국내 기름값도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불안한 국제유가 흐름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입물가는 3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이며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5월2일 발표되는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서 또 한 번 3%대 지표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세운 ‘3월 정점론’도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김·배추·카카오까지… 전방위 상승
29일 관계 부처와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농수산물의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다만 사과 가격은 안정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수산물 유통정보 서비스에 따르면 사과(후지 10개)의 소매가격은 지난 26일 기준 2만6964원으로, 전년 대비 16.94% 올랐다. 여전히 평년 대비 높지만, 지난달까지만 해도 3만원이 넘게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하락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사과값 안정세와 달리 최근 일조량 감소로 양배추, 양파, 당근 등 채소류 가격이 급등했다. 양배추는 지난 26일 기준 가격이 전년 대비 62% 넘게 올라 1포기에 6357원까지 치솟았다. 양파 1㎏ 가격은 2826원으로 전년 대비 20.92% 올랐다. 평년 기준 가격(2148원)과 비교하면 31.56%나 뛰었다. 당근(무세척) 1㎏ 가격도 5657원으로 전년 대비 16.16%, 평년 대비 44.50% 각각 올랐다.
수출량이 늘어 국내 공급이 줄어든 마른김 가격도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마른김(중품) 10장 평균 소매가격은 1304원을 기록했다. 전통시장 가격은 1193원, 유통업체 가격은 1513원이다. 마른김 10장 평균 소매가격은 1년 전(1012원)과 비교하면 29% 올랐으며, 1개월 전(1167원)보다도 12% 상승했다.
고환율·고유가 여파로 원재료의 수입 가격도 상승세다. 최근 커피와 카카오, 올리브유, 설탕 등이 오르면서 이를 재료로 하는 빵과 과자 등 먹거리 가격도 인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식품기업들은 원재료 재고를 소진하는 시기(3~4개월)를 지나면 제품 가격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전언이다.
◆중동발 충격에 불안한 국제유가
먹거리 물가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와중에 국제유가까지 불안한 기류를 보인다. 이란·이스라엘 간 무력충돌로 ‘오일 쇼크’ 공포가 잠재된 상태다. 아직은 국제유가가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지는 않지만, 업계에서는 최악을 가정하면 배럴당 14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수입물가는 물론이고 국내 물가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지난 25일 기준 배럴당 평균 89.23달러를 기록해 지난달(84.18달러) 대비 5.05달러(약 5.7%) 올랐다. 다만 지난주 국제유가는 중동 확전 우려 감소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지연 전망 등의 영향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상승세를 보인다. 4월 넷째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직전 주 대비 ℓ당 13.3원 오른 1708.4원을 기록했다. 이날 평균 가격도 1712원으로 소폭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변동은 통상 2주가량 지나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국제유가 상승에 3월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0.4% 올랐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였으나,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광산품, 석탄 및 석유제품, 제1차 금속제품 등이 오르면서 수입물가를 밀어 올렸다.
◆대외 악재 가득… “물가 쉽게 안 떨어져”
정부는 당초 3월이 지나면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에 연간 물가의 정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안정화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물가 흐름대로라면 당분간 2%대 진입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통제가 어려운 변수로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농산물 가격도 기후위기에 따른 작황 부진에다 일조량 감소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원인으로 작용했고, 국제유가도 중동 리스크로 인한 상승인 탓이다.
한국은행도 물가상승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근원물가(식료품·에너지 등 변동성 큰 품목 제외) 상승률은 당초 예상대로 완만하게 둔화하고 있는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둔화 흐름이 주춤한 모습”이라며 “지정학적 리스크와 농산물 가격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정부 예상보다 고물가 상황이 더욱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연간 물가상승률 전망치로 잡은 2.6%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며 “중동발 리스크가 물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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