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탈북작가인 장진성씨는 “최근 법원의 승소판결로 성폭행 의혹에서 벗어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삶을 송두리째 흔든 성폭력 의혹 이후 법원으로부터 누명을 벗었지만 여전히 그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타임지에 표지를 장식했던 아빠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던 장씨의 12살난 아들은 방송 이후 웃음을 잃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에서 MBC에 대한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지만 MBC 측은 장씨에게 여전히 그 어떤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탈북작가로 명성을 쌓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 악마와만 싸우던 장진성이었다”고 말하는 장씨는 MBC와 치열한 법정공방으로 3년의 세월을 보냈다. 앞으로 한국 공영방송의 참담한 실상을 책으로 쓰겠다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탈북작가 명예 송두리째 흔든 MBC의 성폭력 보도◆
지난 2021년, MBC의 대표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유명 탈북 작가 장진성, 그에게 당했다. 탈북 여성의 폭로(2021년 1월24일)’와 ‘탈북 작가 장진성 성폭력 의혹 2탄… 침묵 깬 피해자들(2021년 2월28일)’을 방송했다. 그리고 인정받던 작가이자 탈북인으로 존경받던 장씨의 삶을 180도 바꿨다.
당시 방송의 상당 부분은 제보자라고 주장한 한 여성의 진술과 그녀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가 차지했다. 탈북 여성인 그녀는 장씨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장 작가는 방송이 방영된 직후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스트레이트 방송 2회분에 대한 전량 폐기 및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장 작가는 3일 세계일보 기자와 만나 “MBC는 방송이 나가기 전에 이미 제보자들의 비정상적인 주장과 행태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말도 안되는 성폭력 의혹을 입증할 어떠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북한의 잘못된 실상과 독재자 김정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며 노력해왔다”며 “MBC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해 모든 신뢰가 한 번에 무너져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망가진 것은 다시 회복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토로했다.
1심인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이 사건 허위의 적시 사실이 원고들에게 입힐 치명성을 고려할 때 MBC와 기자가 철저한 검증을 했어야한다”고 판시했다. 2심 또한 “당초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승모씨가 자신들만의 기억이나 입장에만 근거해 사실을 왜곡하고 원고들을 공격하는 인터뷰를 해 허위보도로 하도록 원인을 제공해 위법하다”고 평가했다.
장씨는 “소송 과정은 힘들었다기보다 MBC가 불쌍했다”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탈북자와의 소송에서 MBC의 거짓과 범죄가 법적인 판단을 받은 데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장씨는 법원판결 이후 이 사건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 사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개인적으로라도 사과해야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결국 답장이 없었다”며 “이것이 공영방송 MBC의 오만함”이라고 비판했다.
◆북한 망친 것은 수령, 한국 망친 것은 가짜뉴스◆
장씨는 “자신이 평범한 탈북자였다면 이런일이 생겼겠느냐”고 반문했다. 즉 유명 탈북작가기 때문에 타겟이 됐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나 또한 북한에 있을때 기자로 활동해왔고, 탈북한 이후 대북매체도 운영했다. 하지만 북한에는 김정은이라는 수령 한사람만이 여론을 조작하는데 한국은 가짜뉴스가 여론을 조작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북한이라는 나라를 망친 것은 수령이라는 독재자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망치는 것은 가짜언론과 가짜뉴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에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같이 여론수용소를 만든 악마가 있다”며 “언론의 공정성과 언론의 무기로 자신들의 절대주의를 위해서 사회에 강요하는 가짜뉴스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밝혔다.
그가 한국의 공영방송에 대해 비판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탈북 전 북한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여론조작에 대한 실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지난 2004년 탈북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조선중앙방송위원회 TV 총국 문예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노동당 대남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 101연락소에서 근무했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한국의 시를 지어냈다. 그러던 2004년 1월, 한국 잡지를 돌리다 적발돼 탈북했다. 품에 자작시(自作詩)를 꼭 안고서다. 그중 하나가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다.
장씨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과방송조차 하지 않는 MBC에 분노를 쏟아냈다. 그는 “이후 MBC는 사과방송은커녕 홈페이지에 단 한 줄의 사과 글도 올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80분짜리 방송 영상은 2심이 나온 뒤에야 내렸지만 예고편을 포함해서 각종 나의 명예를 훼손하는 영상은 최근 방심위 방송소위 의결 뒤에야 내렸다”며 “MBC는 여전히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는 이 방송을 오보라고 이야기하지만 난 조작방송과 거짓방송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장씨는 “나는 직접 피해자”라며 “조작을 넘어서 나를 죽이기 위한 조작방송을 한 악마가 MBC”라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그 가짜뉴스를 만든 악마가 사회와 개인을 유린하는지 봤고 직접 경험했다”며 “앞으로는 책과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MBC 등 공영방송의 탈을 쓴 악마가 어떻게 가짜뉴스를 만들어냈고,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폭력 의혹 보도가 노이즈마케팅? 분노 쏟아내◆
그는 해당 기자의 대응방식에 대해 분노를 쏟아냈다. 장씨는 “담당기자기 방송 이후 나를 만난 자리에서 ‘오히려 이번 방송을 통해 우리 MBC가 노이즈마케팅을 해준 셈이다. 우리는 증거보다 방송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망발을 했다”고 했다.
장씨는 한때 국제적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쓴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는 2012년 영국 옥스퍼드대가 선정한 ‘렉스워너 1등상’을 받았다. 이후 펴낸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는 출간 직후 아마존 아시아 전기물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등 글로벌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2014년에는 영국 ‘더 타임스 매거진’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장씨는 “공영방송이 한 사람의 명예를 땅에 짓밟아놓고 한다는 이야기가 노이즈마케팅이라는 소리에 분노했다”며 “최소한의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조차 없는 MBC의 대응과 기자의 행태에 한국 공영방송에 대해 큰 실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사죄 없이 거짓의 반복을 일삼는 방송이 어떻게 공영언론일 수 있느냐”며 “광우병 선동부터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까지 이런 가짜뉴스를 눈감아 주기 때문에 거짓방송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MBC의 두 방송은 오는 13일 방심위 전체회의에 의결을 앞둔 상황이다. 그는 방심위에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장씨는 “MBC가 단순 실수로 인한 오보나 잘못된 제보로 인해 실수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악의적인 편집에 의한 방송이라는 점을 방심위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제보자들이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점을 취재진이 알고 있었음에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을 정도의 악의적인 방송을 내보냈다는 점을 방심위가 눈여겨 봐줬으면 한다”며 “앞으로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선 이번 기회에 이런 기획 범죄 방송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씨는 “MBC에서 남한의 기교적인 거짓을 보고, 또 직접 당한 당사자로서 처음엔 탈남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 민족의 반을 버린 탈북자”라며 “이제 남은 반쪽까지 포기하고 또 탈남한다면 내 개인과 조상의 민족 정체성이 완전히 부정당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민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끝으로 후배 탈북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했다. 그는 “남한의 자유는 MBC 같은 공영방송에 의해 허위와 조작의 자유도 충분히 허용되는 사회”라며 “이 사회를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아야한다. 개인의 자유는 그 권리와 존엄의 물질적 조건이 충분히 준비된 자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