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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압승 후 힘자랑에 몰두
‘협치 부정’ 발언까지 서슴지 않아
정치 복원 원하는 민심과 어긋나
과거 실패 또다시 되풀이해서야

“국민이 원하시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만을 밀어붙였습니다. 일의 선후와 경중과 완급을 따지지 않았고 정부와 당보다는 나 자신을 내세웠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17대 대선에서 패했고 뒤이은 18대 총선에서 겨우 81석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20년 4월 17일 당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대 국회 초선 당선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열린우리당의 몰락은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최악의 ‘흑역사’로 꼽힌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역풍에 힘입어 과반인 152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17대 국회 내내 내분이 계속됐다. 숱한 계파들로 찢어져 싸움박질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등 무리한 입법도 남발했다. 그 결과 총선 이후 8번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고 정권까지 내줬다.

박창억 논설위원

이해찬 대표가 ‘열린우리당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으나,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총선 압승 뒤 또다시 힘자랑에만 몰두했다. 어설픈 부동산 정책,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정책 등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국회·지방 권력을 장악했는데도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두 번의 총선 대승 후 이어진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패배한 것은 민주당의 오만과 독주 탓이다.

22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기세등등한 민주당은 4년 전의 이 반성문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할 것 같다. 요즘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민심을 오독한 게 분명하다. 민주당에서는 협치를 부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강성 친명계 인사는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협치의 부정은 곧 정치를 하지 말자는 얘기다.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추미애 당선자와 조정식 의원 등은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의장이 되면 조정자가 아닌 거대 야당의 대리인을 자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여야 합의를 주문했다고 자당 출신 국회의장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더구나 민생법안에 앞서 민주 유공자법, 제2 양곡법 개정안, 가맹사업법 등 지지층 입맛에만 맞는 법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선후·경중·완급을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권력 분점 취지에 입각한 국회 관례도 깨고 22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은 물론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까지 독식하겠다는 입장이다. 16대 국회부터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여야가 나눠 맡아왔다. 민주당은 ‘궤멸적 패배’를 당한 18대 국회에서 81석으로도 자신들이 법사위를 차지했던 사실은 잊었단 말인가.

민주당은 자신들이 능력을 갖추고 올바른 비전을 제시해서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착각이다. 총선의 여러 지표가 이를 증명한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비해 지역구 의석을 71석 더 얻었지만, 총 득표율 차이는 5.4%포인트에 불과했다. 민주당이 얻은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은 26.7%다. 조국혁신당을 찍은 24%는 정부 여당을 심판함과 동시에 ‘이재명 민주당’도 싫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투표장에 가지 않은 유권자를 포함하면 전체 유권자 중 비례대표 투표에서 민주당을 찍은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총선 이후 민주당 지지율이 30%대 전후로 국민의힘과 비슷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힘에 뒤지기도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형편없는데도 민주당 지지율 역시 보잘것없다. 야당의 총선 승리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정권 심판론이 불붙은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민주당이 폭주하거나 민생을 챙기지 않으면 민심은 언제든 등 돌릴 것임을 예고한다.

총선 민의, 즉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의 복원’이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우격다짐을 국민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17대, 21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자세를 낮춰야 한다. 강성 지지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관점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또다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것인가.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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