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소송 남발·사기 악용도 우려
부작용 최소화 위한 지혜 모아야
이미 이혼했더라도 당사자 간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면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새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어제 A씨가 전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무효 청구 소송에서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원심의 각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혼을 통해 혼인관계가 해소됐으므로 굳이 혼인무효 확인을 구할 실익이 없다고 본 원심을 깬 것이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대법원 판례는 이혼한 부부의 혼인은 사후에 무효로 돌릴 수 없다는 틀을 유지해 왔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를 40년 만에 뒤집은 것이라서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A씨는 2001년 12월 B씨와 결혼했다가 2004년 10월 이혼했는데, 혼인신고 당시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정신 상태에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대법원 기존 판례에 따라 A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법원도 항소를 기각했다. A씨가 미혼모 가족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 혜택을 받을 길이 계속 막힌 것이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유지할 경우 국민이 온전히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봐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밝혔듯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확연하게 다르다. 혼인이 무효가 되면 애초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민법상 인척간 혼인 금지, 형법상 친족상도례(친족간 범죄는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는 특례) 적용을 받지 않는다. 우리 사회 결혼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칫 혼인 기록을 지우기 위해 혼인무효 소송을 남발하는 경향도 생겨날 수 있어 우려스럽다. 대법원이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요구를 위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혼인관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한 만큼 소송을 통해 엄격한 판단에서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판례 변경이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쉽게 생각하거나 가정의 의미를 퇴색하는 사회 풍조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가뜩이나 이혼으로 해체되는 가정이 느는 상황이다. 혼인무효가 가능해지면서 이혼 이력이 남지 않는 걸 악용한 사기 등 범죄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단위이자 가족 구성원의 안식처다. 가정의 가치와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사회가 부작용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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