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는 그야말로 ‘외국인 천하’다. 구단별로 체격 조건과 재능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누구를 영입하느냐에 따라 순위까지 좌우된다. 지난 2023∼2024시즌 정규리그 최우수 선수(MVP)도 원주 DB를 리그 1위로 이끈 이선 알바노가 받았다. 아시아 쿼터 선수들은 각종 시상에서 국내 선수로 분류하는데, 외국 국적 선수가 국내 선수 MVP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국내 선수의 위상이 추락하는 가운데, 누구보다 존재감을 뽐낸 한국인 선수가 있다. 바로 2021~2022시즌 프로 무대에 뛰어든 고양 소노의 ‘에이스 가드’ 이정현(26·187㎝)이다. 서울 삼성에 동명의 1987년생 이정현(191㎝)이 있어 소노 이정현은 ‘작(은)정현’으로 불렸지만, 코트 위 파괴력은 국내 선수 중 가장 컸다. 지난 시즌 44경기에 나서 평균 36분43초를 소화하며 22.8점 3.4리바운드 6.6어시스트를 작성했다. 득점은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도 전체 5위였고, 어시스트는 리그 1위를 기록했다. 성장을 거듭하며 최정상급 가드로 발돋움한 이정현은 정규리그 시상식서 3점슛(평균 2.9개), 어시스트(6.6개), 스틸(2개) 등 기록상 3개와 기량발전상, 베스트5까지 ‘5관왕’ 위업을 달성했다.
이런 이정현은 2024∼2025시즌 팀 성적 향상과 함께 MVP를 꿈꾼다. 이정현은 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시즌 기록적인 부분에서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팀이 플레이오프(PO)에 가지 못해 아쉽고 속상했다”며 “다음 시즌 개인 성적은 물론 팀 순위도 올라야 한다. MVP는 상위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따라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시즌 이정현은 ‘소년가장’이었다. 3점 슈터 전성현은 부상으로 빠지는 기간이 길었고, 외국인 선수 치나누 오누아쿠는 시즌 내내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이정현은 이런 팀을 이끌고 상대의 집중 견제 속에서 끝없이 부딪히며 득점을 터뜨렸다. 이정현이 다쳤을 때 소노는 8연패 할 정도로 사실상 ‘원맨팀’이었다. 이정현은 “많은 역할을 부여받고, 상대팀의 견제가 늘어난 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이런 걸 이겨내고 싶었다”며 “견제 속에서도 뒤집어서 승리를 따내고 싶었으나,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호랑이’ 김승기 소노 감독은 이정현의 승부욕을 더 자극했다. 이정현이 30점을 퍼부어도 팀이 패배하자, “40점을 넣어야 한다”고 당부할 정도였다. 실제 이정현은 지난 2월14일 부산 KCC전에서 무려 42점을 터뜨려 95-77 대승을 이끌었다. 이정현은 “감독님은 무서운 선생님”이라면서 “많이 혼나기도 하지만 승부욕을 갖게 해준다. 감독님을 만나 농구 실력도 많이 늘었다고 느껴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전했다.
이정현이 바라는 건 오직 승리다. 봄 농구에 진출하겠다는 각오뿐이다. 지난 시즌 이정현의 분투 속에서도 소노는 8위에 그쳐 PO에 나서지 못했다.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소노는 이정현의 바람대로 승리할 수 있는 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희재, 최승욱 등 자유계약(FA) 시장에서 약점으로 꼽혔던 포워드진을 대거 보강했다. 거기다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던 전성현을 조율이 뛰어난 ‘베테랑 가드’ 이재도와 바꿔 앞선도 강화했다. 이정현은 “다음 시즌이 벌써 기대된다. 워낙 재능이 넘치고 슈팅력과 수비도 뛰어난 선수들이 왔다”며 “호흡을 잘 맞춰서 더 높은 무대로 올라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정현은 “결국 팀이 우승까지 승리하게 하는 가드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면서 “개인적인 성장에 더해 팀도 단단해져야 한다. 다음 시즌 많은 승리를 거둬 팬들과 선수들 모두 즐거운 농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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