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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줄어도 업무량은 그대로 … 직원도 회사도 부담 [심층기획-육아기 단축근무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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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13 06:00:00 수정 : 2024-06-13 09: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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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체 3곳 중 1곳 “제도 몰라”
일·가정 양립 지원책 유명무실

근무 강도 세지고 월급 줄어 이용 저조
동료 눈치·인사고과 불이익 우려도 커
육아휴직 대비 이용자 수 5분의 1 불과
기업은 대체인력 채용 등 어려움 호소
“제도 취지 좋지만 실제 적용은 한정적”

단축근무 이용현황·전문가 제언
2018년 14%서 2023년 10%로 되레 감소
유경험자 만족도 높지만 활용 어려워
“사업주 지원 연계·제도 홍보 강화해야”

# 지난해 3개월 정도 하루 2시간씩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이용했던 A씨는 다시 이 제도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내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려 사용했지만, 업무량은 그대로였던 데다 인사고과에 대한 불이익도 우려됐던 탓이다. B씨는 “근무시간이 줄었지만 업무 양은 그대로여서 업무를 다 마치기 위해 점심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면서 “좋은 고과를 기대하기 힘들고 다른 팀원의 눈치도 보여서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B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 하원을 위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쓰려다 포기했다. 아이가 학교를 마치는 시간대인 오후 1시 전후부터 1시간가량 이 제도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회사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조건 회사에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A씨는 “학교 마치고 학원까지 데려다주는 시간이 중요한데, 회사에서 고압적으로 나와 그냥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제도 취지는 좋지만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회사는 한정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기업 인사 담당자의 약 3분의 1이 이 제도를 모른다고 응답했고, 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조차 과반이 직장 내 압력 등을 이유로 들어 ‘제도 활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그렇다 보니 제도 이용자 수는 육아휴직의 5분의 1 수준에 머물렀고, 남성 비중은 5년 전보다 오히려 하락해 10% 정도에 그쳤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추락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어 일·가정 양립 정책의 안정적인 확산이 시급하지만 이처럼 구멍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사업체 3곳 중 1곳, 제도 알지도 못해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 ‘노동시장 변화와 대응방향’에 실린 ‘육아기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에 대한 기업의 인식 분석’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 1만270곳(2020~2021년 기준) 소속 인사 담당자 중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에 대해 ‘모른다’고 답한 이는 전체의 32.6%에 달했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사업주의 법적 의무로 규정돼 있는데도 담당자 3분의 1 정도는 알지도 못했다.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29.8%에 그쳤다.

 

이 제도는 만 8세 또는 초등 2년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를 상대로 최대 1년(육아휴직 미사용 기간 포함 시 최대 2년) 동안 근로시간을 주 15~35시간 단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도입 당시인 2008년만 해도 소득 감소가 부담스러운 근로자들이 육아휴직 대신 선택했는데, 2019년 육아휴직과 별도로 추가 1년간 쓸 수 있게 개정되면서 독립적인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사용 근로자에게는 통상임금의 80~100%의 단축 급여가 지급되고, 우선대상지원기업(상시근로자 500명 이하 제조업 등)에는 월 30만원의 보조금과 월 80만~120만원의 대체인력 지원금이 추가 지원된다.

 

설문조사 결과 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이 제도를 모른다고 응답한 확률이 높았다. 산업별로는 제조업 대비 건설업, 광업, 수도·하수·폐기물·원료재생업 등에서 모른다고 답할 확률이 약 40%포인트 높게 추정됐다. 공공부문 사업체는 민간부문 대비 모른다고 응답할 확률이 16.1%포인트 낮았다.

 

이 제도를 알고 있는 8049곳 중 18.6%는 ‘전혀 활용할 수 없다’, 27.0%는 ‘불충분하게 활용 가능’이라고 답하는 등 이용 가능성도 높지 않았다. 특히 30인 미만 영세 사업체와 건설업, 숙박·음식점업, 예술·스포츠·여가서비스업 등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이 제도 사용에 부담을 느끼는 건 근로자도 마찬가지였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22년 펴낸 ‘평등한 돌봄권 보장을 위한 자녀돌봄 시간정책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 제도를 사용한 이들 52.5%는 ‘제도 이용 시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기업의 낮은 인지도와 근로자의 이용 부담감이 더해지면서 다른 가족친화정책과 비교해 제도 확산은 더딘 상태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 수급자 수는 2019년 5660명에서 2020년 1만4698명, 2021년 1만6689명, 2022년 1만9466명으로 증가한 뒤 지난해 2만3188명으로 처음 2만명을 넘었다. 이용 대상이 동일한 육아휴직급여 수급자(지난해 12만6008명)의 18.4%에 그치는 등 활용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근로자는 ‘동료 눈치’, 사업주는 ‘관리 부담’

 

‘1일 1시간 근로시간 단축 허용’(2019년) 등 자녀 등·하원에 유용한 맞춤형 제도임에도 활용도가 이처럼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11월 발간된 육아정책연구소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이 소속 직장 규모·업종을 고려해 근로자 22명, 사업체 5곳을 면담 조사한 결과 근로자는 직장 내 압박감을, 업체는 인력 운용의 어려움 등을 각각 호소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한 근로자는 이 제도를 사용하지 못한 이유로 “어쨌든 제 근로에 맞게끔 돈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일찍 가네’라는 매일매일 그런 눈치를 받는 게 약간 부담되더라”고 토로했고, 또 다른 근로자는 “2시간 일찍, 3시간 일찍 간다 그랬는데 그 업무가 또 내일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요”라고 전했다.

 

이 제도를 실제 활용한 이들은 경직된 직장문화, 인사고과에 대한 부정적 영향, 동료 관계에서 눈치를 보게 되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거론했다. 한 근로자는 “이 제도를 사용하면서 저희 팀에는 다 너무나 큰 민폐였고, 저는 되게 미안했다. 이걸 장려하거나 이런 분위기는 당연히 아니었다”고 말했고, 다른 근로자는 “만약에 단축을 쓰지 않았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부탁을 (동료에게) 하게 되는 거니까 그런 업무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같다”고 말했다.

 

육아휴직과 달리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사용하면 그 다음해 연차 일수가 삭감되는 데 대해 부담을 느낀다는 답변도 많았다. 이와 함께 사용자 측의 허용 예외 사유가 ‘대체인력을 채용하지 못한 경우’,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처럼 폭넓게 규정돼 있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기업 역시 현실적으로 부담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데다 인사관리 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푸념이다.

 

면담 결과 직원 수가 18명인 한 사업체는 직원 개개인의 ‘맨파워’(역량)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단축근무를 허용하긴 쉽지 않다고 밝혔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육아 때문에 단축근무를 했을 때 생기는 로스(손실)를 부서원이 나눠서 해야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회사 관계자는 “저는 (인사 담당자로서)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겠지만 사실은 인사 쪽에서 아무리 푸시를 해도 (현업 부서에서) 쉽지 않다. 그런 분들의 인식은 아직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윤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육아휴직에 비해 근로시간 단축은 대체인력 채용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남은 동료가 십시일반으로 업무 분담을 해 메워줘야 하는 측면이 있어 근본적으로는 기업 규모가 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제도 활용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원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현재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지원이 이뤄져 지원 규모를 늘리기에 한계가 있는데, 이 제도가 출산 장려 및 아동과의 교감을 증진하는 측면도 있는 만큼 다른 재원을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9일 한 공원 물놀이장을 찾은 아빠와 어린이들이 물놀이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남성 10명 중 7명 ‘이용한 적 없어’

 

현행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는 남성의 활용 비중이 10%대로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이 제도를 활용한 남성 근로자의 70% 넘는 인원이 ‘매우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만큼 아빠들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맞춤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연초 발표된 논문 ‘영·유아기 자녀를 둔 아버지들의 가족친화제도 이용 현황’에 따르면 영유아기(2017년생~2023년생) 자녀를 양육하는 남성 104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766명(73.3%)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이용한 적 없다’고 응답했다. 이어 168명(16.1%)은 ‘제도를 모른다’고 답했다. ‘이용한 적 있다’는 101명(9.7%)에 그쳤다.

 

제도를 이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자녀 등·하원을 위해서’라는 답이 53명(53.5%)으로 가장 많았고, 29명(29.3%)은 ‘아내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라고 밝혔다.

 

제도를 이용한 아버지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전체 100명 중 73명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고, ‘도움 되었다’도 26명에 달했다. 만족도는 높은데 활용은 어려운 ‘그림의 떡’ 같은 제도인 셈이다.

 

실제 2018년 14.4%에 달했던 남성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수급자 비중은 지난해 10.4%로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하는 부모를 위한 돌봄시간정책 동향’ 보고서를 통해 “남성의 인지도와 활용도를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 홍보도 강화해야 한다”며 “근로자 인구학적 구성을 고려해 젊은 남성이 많은 경우 컨설팅하면서 사업주 지원제도를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월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 올해 하반기부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대상 자녀 연령을 ‘만 8세 또는 초등 2년’에서 ‘만 12세 또는 초등 6년 이하’로 상향하고, 사용 기간도 최대 24개월에서 최대 36개월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끝내 처리되지 못하면서 하반기 시행은 사실상 힘들어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같은 내용으로 22대 국회에서 정부 발의 법안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근로자는 경력 유지에 도움이 되고, 사업주 입장에서도 기존 인력이 계속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많기 때문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지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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