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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담긴 역사와 의미… 민정기 아카이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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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22 05:53:00 수정 : 2024-06-22 05: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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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그림(키치화)’의 파격
인문학적 지도그림- 산수풍경
다시 우리시대 삶의 풍경으로
민정기 아카이브전 ‘놓치지 못하는 풍경’

그림 속 왼쪽 위 세명의 인물들은 벽계구곡을 경영한 화서 이항로(중앙)를 중심으로, 의병대장 면암 최익현(왼쪽),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물리친 하거 양현수(오른쪽)다. 좌우 두 인물 모두 이항로에게 가르침을 받은 위정척사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 아래에 서종면 수입리에서 노문리까지 10km 넘게 펼쳐진 벽계구곡을 고지도 형식으로 배치했다. 벽계구곡은 작가가 수십차례 그렸던 공간이다. 강화도 전등사 명부전의 금강역사 목조상이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신미양요 때 강화도 광성보 전투에서 순국한 어재연 장군과 군인들을 추모하는 쌍충비가 보인다. 프랑스군의 병인양요에 이어 미 해병들이 강화도를 침략한 신미양요 상황이 묘사돼 있다.

‘벽계구곡도’(1992)

원로작가 민성기의 ‘벽계구곡도’(1992)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벽계구곡을 그린 것이지만, 단순히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는 작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리고자 하는 공간의 역사, 의미, 살아온 인물, 사라진 것과 변화한 것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작품을 빚어낸다.

 

풍경을 그리면서 민중의 언어로 시대상을 이미지화한 작가는 1980년대 이발소에나 걸려있을 법한 통속적 예술인 소위 ‘이발소 그림’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1987년 양평 서후리로 거처를 옮긴 뒤로는 농촌 풍경들을 담아왔다. 벽계구곡(蘗溪九曲)을 답사하고 화폭에 옮기면서 극적인 변곡점이 만들어졌다. 

 

25일부터 8월18일까지 양평군립미술관에서 ‘놓치지 못하는 풍경’이란 문패를 단 민정기 아카이브전이 열린다. 평면 회화(판화) 등 70여 점의 작품과 작가연구 기록물 등 아카이브 자료 100여 건이 관객을 맞는다.

 

대중적인 것에서 참된 미를 발견하고 서민적인 정서로 현실을 재해석한 초기 작품들과 양평 이주 후 오래된 마을과 그 지형을 묘사하면서 자연스레 이어진 자연에 대한 시선, 그리고 시간의 지도 위에 사라진 역사적 존재들을 재존재(Re-existence)하게 하는 현재의 작업들까지, 작가와 작품 세계의 다양한 층위를 시기별로 감상할 수 있다.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양평에 자리잡기 전까지는 그로테스크한 도시, 냉철한 사회 모습을 담은 풍자화, 미술의 대중성과 사회비판적 성향을 갖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하며 서울 삼각지 부근에서 성횡하던 상화(商畵)를 작품으로 내놓았다. 이는 저급한 미술을 뜻하는 ‘키치화’, ‘이발소 작품’이라 불렸는데, 지금은 대중의 삶과 바람을 담은 생활미술로 평가된다. 근현대사의 장면을 포토 몽타주 형식으로 담아낸 ‘역사의 초상’, 황석영의 ‘한씨 연대기’ 삽화와 ‘포옹’, ‘개인택시’, ‘돼지’ 등이 대표작이다.

‘포옹’(1981)
‘풍요의 거리’(1981)
‘벗고개 2024’(2024)

양평 서후리 외양간을 고쳐 쓰던 작업실은 낮은 층고와 조도, 온습도 조절 등이 어려워 작가에게 좌절을 안기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안산 대부도의 경기창작레지던시, 양주 장흥, 고양시 등으로 옮겨 다니다 2017년 양평 양서면 부용리에 새 작업실을 마련했다.

 

2020년 들어 국립현대미술관, 아르코 예술기록원 등에서 그에 대한 인터뷰 등을 진행했으며, ‘제13회 광주비엔날레’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수원시립미술관 등 전시, 서울시립미술관 최민 컬렉션 등을 통해 소개됐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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