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선 적극 규제… 국내선 흡연조장 방치
멘톨, 과일 향 등을 첨가한 담배 제품이 흡연을 유인해 청소년들이 흡연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등 선진국은 이같은 가향 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추세지만 국내에선 관련 규제가 미비해 담배업체들이 다양한 종류의 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실정이다.
질병청이 2022년 5∼6월 13∼39세 1만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흡연자 5243명 중 가향담배 사용자는 77.2%(4045명)로, 2016년(64.8%)보다 12.4%포인트 증가했다. 가향담배는 향을 추가한 일반 궐련형 담배와 전자 담배 등을 의미한다. 연령별 가향담배 사용률은 13∼18세 85.0%, 19∼24세 80.1%, 25∼39세 74.5%였다. 특히 가향담배가 흡연을 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응답자는 67.6%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32.4%)보다 2배 넘게 많았다. 가향 담배가 청소년들이 흡연을 쉽게 접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가향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경우 흡연자로 남아있을 가능성은 비가향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경우보다 1.4배 높기도 했다.
특히 일회용 액상담배는 화려한 디자인 등으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쉽게 끈다. 지난달 서울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조사회사 마크로밀엠브레인을 통해 전국 5개 광역시 만 20세에서 59세 사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일회용 액상담배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약 70%가 일회용 액상담배를 음료수, 화장품, 향수, 장난감 등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인지 이유로는 약 60%가 담배처럼 보이지 않는 디자인과 색상을 꼽았으며, 패키지에 그려져 있는 귀여운 만화 캐릭터 때문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또한 응답자의 55.6%가 일회용 액상담배의 화려한 디자인, 저렴한 비용, 쉬운 구매로 인해 청소년 사이에서 액상형 전자담배가 확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가 25일 편의점 등 전자담배 판매처를 방문해 본 결과 청소년들의 눈길을 쉽게 끌만한 광고가 걸려있었다. 비치된 홍보물 대부분에 ‘파인애플’ ‘망고’ 등 제품 이름에 직접적으로 과일 등 향을 유추할 수 있는 이름이 들어가 있거나 제품 설명에 맛 표현이 적혀 있었다. 제품의 포장 또한 향과 관련된 다양한 색상, 이미지 등이 활용됐다.
현행법은 담배 광고에 향기가 나는 물질을 표시하거나 소비자가 담배의 위험성을 경시하도록 하는 문구를 표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9조의3에 따르면 제조자등은 담배에 연초 외의 식품이나 향기가 나는 물질을 포함하는 경우 이를 표시하는 문구나 그림·사진을 제품의 포장이나 광고에 사용할 수 없다. 담배사업법 25조의5도 제조업자 및 수입판매업자는 담배의 포장이나 광고에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위험을 경시하여 담배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할 우려가 있는 용어, 문구, 상표, 형상 등을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적극적인 규제가 이뤄지지는 않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행 규정에 따르면 단순히 맛 표현을 기재했다고 처벌하기는 어렵다”며 “어떻게 광고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가향담배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 규제 기본 협약 지침을 통해 가향 성분 등 담배 맛을 향상하는 각종 첨가물 사용을 금지하도록 권고한다. 유럽연합(EU)도 궐련 및 말아 피우는 담배에 가향물질 첨가를 2014년부터 금지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가향담배 규제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기존 흡연자들은 피우던 담배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OO맛’ 담배 등은 아직 흡연 경험이 없는 청소년, 비흡연자들을 상대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이라며 충분히 소비자가 담배의 위험성을 경시하게 하는 문구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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