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 때 지식인 몰려 가족들 고초
SCMP, 탄생 100년 맞아 재조명
중국 핵무기 개발의 아버지로 통하는 ‘중국판 오펜하이머’ 덩자셴(鄧稼先·사진)이 굴곡진 삶을 살았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5일 보도했다.
SCMP는 1924년 6월25일 출생한 덩자셴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삶을 조명했다. 매체는 덩자셴이 1960∼1970년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에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중국 ‘양탄일성(·두 개의 폭탄과 하나의 위성)’ 독자 개발의 주역이었지만 베일에 싸인 그의 삶은 불행했다고 전했다.
안후이성 지식인 집안에서 출생해 ‘국가에 도움이 돼라’는 가훈 아래 성장한 그는 중국 내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미국 퍼듀대로 유학했으며, 1950년 박사 학위를 딴 뒤 곧바로 중국으로 돌아갔다. 덩자셴은 귀국 후 26세의 나이로 중국 핵무기 프로그램(프로젝트596) 담당자로 선발됐다. 이후 그는 소련·미국 등 다른 핵보유국들과는 다른 기술적 경로로 폭탄을 설계했고 결국 1964년 첫 원폭 실험을 성공시킨 데 이어 1967년에는 수소폭탄 첫 단계인 열핵 장치 테스트에도 성공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 덩자셴을 포함한 온 가족이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공격받는 고초를 당했다. SCMP는 그의 여동생이 홍위병들의 공격으로 쇠약해져 사망에 이르렀고, 아내는 직장에서 폭행당했으며 딸은 시골로 내쫓겼다고 전했다.
SCMP는 덩자셴이 1979년 한 실험에서 실패한 후 폭탄 잔해에서 실패 원인을 규명할 부품을 찾겠다고 나섰다가 심한 방사능에 노출됐으며, 이 과정에서 암이 발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덩자셴은 1986년 자신이 사망하기 한 달 전에야 암 발병을 확인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름이 공개됐을 정도로 생전에는 그의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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