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과 을의 싸움’만 남아…산식 객관화도 필요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0원으로 확정된 뒤 노·사·공이 일제히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의견이 갈리는 지점도 있지만, 논의가 지나치게 소모적이며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모두가 공감을 표했다.
12일 결정된 내년 최저임금은 27명의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위원 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근로자위원 4명이 항의 퇴장해 23명의 표결로 이뤄졌다. 최저임금이 노사 합의로 결정된 적은 2008년(적용 연도 2009년)이 마지막이다.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결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공익위원의 권한이 막대하다는 지적과 노·사 간 갈등은 갈등대로 표출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인재 최임위 위원장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지금의 결정 시스템으로는 합리적·생산적인 논의가 진전되기에는 조금 한계가 있지 않으냐는 생각”이라며 “여러 안이 있는데, 앞으로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개편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와 후속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했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심의 촉진 구간의 산식도 개선점으로 꼽힌다. 12일 공익위원 측은 1만원(하한선)~1만290원(상한선)을 심의 촉진 구간으로 설정했다. 하한선은 올해(9860원)보다 1.4% 인상된 액수로 중위 임금의 60% 수준이 고려됐다. 상한선은 4.4% 인상액으로 2024년 국민경제 생산성 상승률 전망치(경제성장률(2.6%)+소비자물가상승률(2.6%)-취업자증가율(0.8%))를 반영했다. 이는 최근 2개년(2021~2022년) 동안 적용된 산식이다. 지난해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3.4%)+생계비 개선분(2.1%)‘을 적용해 5.5%를 상한선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과 소득 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한다’라고만 돼 있다.
산식 적용의 일관성에 더해 노동계에서는 ‘생계비’ 기준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공익위원들은 제 입맛에 맞는 제시안이 나올 때까지 양측에 수정안 제시를 요구하다 종국엔 자신들이 만든 근거 없는 산출식으로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기 위해 최임위의 상설화, 전문가 중심 논의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5년간 최임위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제도는 노사가 모두 진영 논리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양쪽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 구조를 바꾸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반년 전에 결정하는 구조도 최저임금 논의 기구를 상설화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는 노사 모두 공감하고 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현재 결정구조는 공익위원들이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흘러가 예측 불가능하다”며 “지금은 노사가 모여 논의한다곤 하지만 감정으로 부딪히고, 결국 ‘을과 을의 싸움’으로 남게 된다”고 밝혔다.
‘구분(차등) 적용’ 관련 제도 개선에는 노사가 극명한 입장 차를 보인다. 최저임금은 도입 첫해인 1988년 업종별 구분 적용이 이뤄졌고 1989년부터 현재까지는 단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경제인협회는 입장문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 방식이 적용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구분 적용 시행을 위한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반면 노동계는 최임금법상 구분 적용 논의 근거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류 사무총장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인데 근거 조항이 남아 있어 계속 논란이 되고, 갈등과 부작용을 낳는다”며 “산업 전환에 따라 다양한 직종을 껴안을 수 있도록 최저임금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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