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밥캣, ‘적자’ 로보틱스와 합병 추진
㈜두산, 한 푼 안 들이고 밥캣 지배율 ‘쑥’
개인투자자 신뢰 ‘뚝’… 그룹주가 줄하락
금감원,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급제동’
한화도 보통주 낮은 공개매수가로 논란
거버넌스포럼 “주주 충실의무 절실” 주장
업계·정치권 “법적·제도적 정비 나서야”
두산그룹 등 몇몇 대기업이 추진 중인 지배구조 개편안을 놓고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소수주주는 외면한 채 대주주에 유리하게 개편하려 든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투자자들을 국내 주식시장으로 유인하겠다면서 추진하는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에도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배구조 개편안 중 가장 큰 논란을 빚은 기업은 두산그룹이다.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등 주요 계열사의 공시를 통해 사업구조 재편계획을 알렸다. 건설기계 회사 두산밥캣을 원전 등 에너지를 담당하는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는 게 골자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주식을 1대 0.63의 비율로 교환할 예정이다. 자본시장법은 상장기업 간 합병 시 최근 일주일∼한달의 주가를 평균해 이를 토대로 교환비율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
당장 두산밥캣 일반주주는 알짜회사 주주로 있다가 적자회사 주주가 되는 데다 주식 교환비율도 불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2분기 기준 두산밥캣의 매출액은 2조2366억원, 영업이익은 2395억원인 데 반해 두산로보틱스는 매출액 144억원, 영업손실 79억원을 봤다.
지배구조 개편 후 두산 사주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적 지배율은 14%에서 42%로 올라가는 점도 성토 대상이다.
자본시장에서는 두산이 개인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동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업황 둔화와 신뢰 저하로 (주가)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도 두산로보틱스의 관련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을 요구했다. 합병이 불러올 수 있는 투자자 손실을 자세히 기재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두산그룹 주가는 하락세다. 공시 전인 10일 종가 대비 26일까지의 수익률을 따지면 ㈜두산은 -30%, 두산에너빌리티는 -13.6%, 두산밥캣은 -16.7%를 각각 기록했다. 이 기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두산밥캣 주식 2218억원어치를 순매도하는 등 실망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화그룹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다.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전량을 보유한 한화에너지가 그룹 지주사인 ㈜한화 지분 8%를 확보하겠다면서 공개 매수를 추진했는데, 5.2% 모집에 그친 바 있다. 앞서 한화에너지는 ㈜한화 주식을 3만원에 사겠다고 제시했는데, 올해 진행된 공개매수 거래에서 할증률(약 10%)이 낮은 편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한화의 지배주주는 책임경영 강화로 기업 가치가 제고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장기간 극히 낮은 주가 성과로 피해를 입은 ㈜한화 일반주주는 왜 지배주주에게 주식을 팔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거버넌스포럼은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은 두산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고 저지도 못하도록 손발을 묶는 건 우리의 법, 제도”라며 주주에 대한 충실·보호 의무를 강화하도록 상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은 상장기업 간 합병 시 주식 가치가 아닌, 자산 및 수익 가치를 산술 평균화해 가치를 매기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22일 인사청문회에서 두산 지배구조 개편 논란에 대해 “시장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제도적으로 고칠 부분이 있는지 제가 (금융위원장으로) 일을 하게 될 때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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