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을 앞두고 미국 NBC의 해설자는 “농구에서 갖는 미국 드림팀의 위상을 양궁에서는 한국 여자팀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1992 바르셀로나 때부터 NBA 선수들의 출전이 가능해지면서 붙은 미국 농구 대표팀의 별칭인 ‘드림팀’은 2004 아테네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 덜미를 잡혀 동메달에 그친 바 있다.
반면 한국 여자 양궁은 단체전이 신설된 1988년 서울부터 2020 도쿄까지 33년간 9연패를 달성하며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적어도 올림픽에서의 종목 지배력은 미국의 ‘드림팀’보다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이 한 수, 아니 두 세수는 위인 셈이다.
2024 파리에서도 한국 여자 양궁은 단체전에서 절대지존의 포스를 또 한 번 내뿜었다. 임시현(한국체대), 남수현(순천시청), 전훈영(인천시청)으로 이뤄진 한국 대표팀은 28일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슛오프 끝에 5-4(56-53 55-54 51-54 53-56 <28-27>)로 극적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양궁이 10번의 올림픽 동안 선수들의 면면은 바뀌면서도 단체전 ‘패권’을 절대 놓치지 않은 이유는 이전 올림픽 실적 등 ‘전관예우’나 ‘계급장’은 떼고 오로지 대표선발전에서 보인 기량만으로 국가대표를 결정하는 철저한 원칙 덕분이다.
이번 파리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선수들과 3년 전 도쿄에 출전한 선수들의 면면이 전혀 다르다. 강채영과 장민희는 물론이고 3년 전 도쿄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전까지 석권하며 한국 선수로는 하계올림픽 최초의 3관왕에 오른 안산마저 이번 올림픽에선 탈락했을 정도다.
이번 여자 양궁 대표팀 선수들은 사실 우려가 없진 않았다. 올해 세 차례 월드컵 단체전 중 1,2차 대회에서 중국에 단체전에서 패배했었기 때문. 게다가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어낸 선수들이니 기량은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세 선수 모두 올림픽 경험이 전무한 선수들이라는 것도 걸리는 점이었다.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도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는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올림픽 랭킹라운드에서 임시현과 남수현이 1,2위를 차지하며 기량을 입증했다. 전훈영은 랭킹라운드에서 13위에 머물렀고, 이날 단체전 8강과 4강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10연패가 달린 결승에서 그야말로 ‘하드캐리’했다. 결승에서 쏜 9발의 화살 중 무려 6개를 10점에 명중시켰다.
특히, 슛오프에서 10점을 쏜 게 컸다. 전훈영과 임시현이 쏜 화살은 9점과 10점의 경계에 꽂혀 사후 판독에 들어갔다. 남수현도 9점을 쏴 전훈영과 임시현이 모두 9점으로 판독되면 27점이 되는 상황. 중국 세 선수도 각각 8점, 10점, 9점을 쏴 27점이었다. 동점이면 10점을 쏜 선수를 보유한 중국의 금메달이 되는 상황이었다. 사후 판독 결과 전훈영의 슛오프 화살은 10점으로 판독됐다. 이 화살 한 발로 올림픽 10연패가 좌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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