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무용론 고조 현실 직시해야
민생법안 산적, 출구전략 찾을 때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추진하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에서 통과됐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운영법과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 등 방송 4법 모두가 통과된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5박6일 무려 111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로 맞섰지만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즉각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채 상병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국회 의결, 대통령 거부권, 재표결, 폐기 수순을 밟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런 소모전이 언제나 끝날지 답답한 노릇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노란봉투법과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도 예정대로 내달 중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될 법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 법도 국회 의결, 대통령 거부권, 국회 재의결로 자동폐기 수순을 또 밟게 된다. 여야 모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금명간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지난 주말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자진 사퇴한 이상인 부위원장 후임자를 임명하면 방통위 사태 역시 도돌이표를 찍게 될 것이다. 이런 비정상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입법폭주와 필리버스터 악순환에 대한 회의론이 여야 일부에서 나오는 것은 고무적이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어제 의원총회에서 “방통위원장 문제와 채 해병 특검 등 전체적으로 실제 관철을 위한 현명하고 지혜로운 대책을 마련할 때”라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강력하게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도 “필리버스터는 국민적 피로감을 높이고 실효성 면에서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에서 일방적 승리는 있을 수 없는 법이다. 한치 양보 없이 상대를 꺾으려고만 해선 안 된다.
국회에는 방송법보다 더 시급한 민생법안이 산적해 있다. 22대 국회가 문을 연 지 두 달이 넘었지만 민생과 직결된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한 게 있나. 그런 만큼 여야는 이제라도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얼마 전 “여야 지도부가 국회의원들을 몰아넣고 있는 이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고 한 말을 곱씹어보길 권한다. 지금 같은 상황은 국민에게 정치불신과 정치혐오만 안겨줄 뿐이다. “국회를 없애자”는 국회무용론이 나오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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