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신뢰 잃어 지분 매수자 없을 듯
具 대표 ‘800억 약속’ 사실상 어려워
기업회생·‘ARS 프로그램’도 불투명
“具 큐익스프레스 지분 내놔야” 목소리
1조원대 정산과 환불 지연 사태 피해자 보상을 위해 구영배 큐텐 대표가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했던 싱가포르 기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를 포함해 동원 가능한 사재를 모두 처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력으로 8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구 대표 약속의 바탕인 큐텐 지분 가치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어버려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비상장사인 큐텐에서 구 대표가 가진 지분의 가치는 지난해 기준 약 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큐텐 지분 0.34%(32만4324주)를 보유하고 있는 NHN은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에서 이 투자금의 장부가액을 36억7500만원으로 보고했다. 이 평가금액을 기준으로 계산한 구 대표의 큐텐 주식(3461만8577주)의 가치가 약 4000억원이다. NHN은 지난해 3월 티몬 주식 190억원어치를 스와프하는 방식으로 큐텐 주식(보통주)을 취득했다. 190억원을 주고 산 티몬 주식을 큐텐 주식으로 바꿨는데 36억원대로 주저 앉은 것이다.
문제는 이번 티메프 사태로 인해 큐텐을 비롯한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 관계사들의 주식 가치가 현저히 떨어져 현재 평가는 이보다 더 박할 것이란 점이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큐텐과 산하 회사들의 손실 규모만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이커머스 사업은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이들 회사의 사업 역량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또 티메프 등 큐텐 계열 이커머스에서 이탈한 소비자들도 발 빠르게 쿠팡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을 포함한 전체 지분이 매물로 나오더라도 매수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구 대표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자금은 현재 800억원”이라면서도 “이 부분을 다 투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말 기준 티몬·위메프 소상공인 미정산액(21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나마 지분 가치가 남아 있고,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큐익스프레스의 주식을 구 대표가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기 위해 티메프 등 관계사들의 자금을 유용해 인수·합병을 해왔다. 큐익스프레스는 계열사들의 국내외 배송사업을 담당해왔기 때문에 큐텐의 이커머스 사업 몸집이 커질수록 매출과 실적이 함께 증가하는 구조였다. 사실상 각 계열사들의 희생을 등에 업고 큐익스프레스가 성장해온 것이다.
구 대표가 키운 큐익스프레스의 경우 1조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목표로 상장 준비를 해왔고, 최근 인수전에서 큐텐이 매수자에게 현금 대신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큐익스프레스는 지난해 매출 810억원에 당기순손실 10억원으로 그룹 내 타 관계사들과 비교해 그나마 재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구 대표를 둘러싼 책임론이 계속 불거지는 것도 큐익스프레스 지분 계속 보유의 명분을 약하게 하는 분위기다. 큐텐은 지난 4월11일 미국 이커머스 업체인 위시 인수 자금 명목으로 티몬에서 200억원을 빌렸는데, 이때 류광진 티몬 대표의 최종 승인도 없이 결제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은 티몬과 위메프의 기업회생 인가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가 자본잠식 상태고, 추가적인 자금 조달 가능성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티메프가 신청한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도 성공하려면 자금 수혈이 전제돼야 하는데 신뢰를 잃어버린 기업에 자금을 태울 곳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한편 큐텐 그룹의 2017년 지분도에 따르면 구 대표는 큐텐의 전신인 지오시스를 설립할 당시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모회사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피난처의 경우 소득을 빼돌리거나 탈세에 악용된다는 점에서 자금 흐름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큐텐은 “처음 기업을 설립할 땐 버진아일랜드에 모기업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기업이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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