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개발 위한 데이터센터 우후죽순
2년 후 전력 수요 현재의 10배 증가
벨기에 연간 전력 소비량 초과 추산
전력난에 석탄화력발전소 수명 연장
데이터센터 열 식힐 물 사용량도 급증
AI활용 친환경 기술 발전 ‘무궁무진’
‘지구온난화 구원투수’ 기대감 여전
챗GPT에게 하나의 질문을 할 때마다 얼마만큼의 전력이 소비될까? 답은 “전구 하나를 20분 동안 켤 수 있는 양”(앨런 인공지능 연구소)이다.
지난해 초 챗GPT의 하루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1000만명이 각각 질문을 10개씩만 한다고 가정해도, 전구 하나를 약 3333만시간 이상 켤 수 있는 전력량이 매일 전 세계에서 챗GPT로 인해 소모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기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직격탄으로 받는 이유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AI가 기후위기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맞선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AI 기술은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AI는 기후위기를 앞당기러 온 ‘악당’인가, 인류를 위기에서 구원할 ‘영웅’인가. 아직은 이를 결정하기 어려운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AI, ‘전력난 시대’를 열다
생성형 AI의 학습과 구동을 위한 데이터센터는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8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초 전 세계 데이터센터는 7000개를 넘어섰는데, 2015년 3600개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데이터센터는 말 그대로 ‘전기 먹는 하마’다. 데이터 처리 과정에 엄청난 전력이 소모되는 데 이어 연중무휴 24시간 가동해야 한다.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운영하는 하이퍼스케일(초대형) 데이터센터의 증가세는 더욱 위협적이다. 시장조사업체 시너지 리서치 그룹은 2021년 3분기 기준 700개에 달했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2024년 초 1000개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AI 산업을 선도하는 거대기술(빅테크) 기업들도 앞다퉈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2028년까지 약 1000억달러(135조원)를 들여 슈퍼컴퓨터가 있는 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2026년에 이르면 전 세계의 AI 관련 전력 수요가 현재의 10배 이상으로 증가, 벨기에와 같은 작은 나라의 연간 전력 소비량을 초과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으로 한정해서 보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같은해 미국 전체 전력 사용량의 6%, 2030년에는 8%로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고 골드만삭스는 분석했다.
◆AI, ‘탄소중립 시대’를 가로막다
AI 발달로 전력 소비가 폭증하면서 기업들은 전기를 생산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데도 실패했다. AI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의 ‘방해꾼’이 된 것이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전력량의 70%가 여전히 화석연료를 이용한 기존 방식으로 생산됐다. 친환경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30%에 그쳤다.
구글은 지난달 공개한 연례 환경보고서에서 지난해 자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1430만tCO2e(이산화탄소환산톤)에 달해 전년 대비 13%, 2019년 대비 48% 증가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배출량이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 AI 집중 투자에 따른 데이터센터 전력량 증가를 꼽았다. 구글은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약속하고 무탄소 에너지 사용을 크게 늘렸지만, 폭증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MS 역시 지난 5월 발표한 환경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 건설로 인해 2020년 이후 탄소 배출량이 29% 늘었다고 밝혔다. MS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0)’를 넘어 ‘마이너스(-)’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나, 브래드 스미스 MS 부회장은 보고서 발표 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AI 열풍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로 (탄소 감축) 목표에서 5배 정도 멀어지게 됐다”고 털어놨다.
MS는 늘어나는 배출량을 이기지 못해 미국의 대형 석유·가스회사인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으로부터 50만t에 이르는 탄소배출권을 수천억원 규모에 구매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AI, 기후위기 ‘주범’으로 성장하나
미국에서는 AI 전력난을 우려해 화석연료 발전소를 늘리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된다. AI가 기후위기를 가속한다는 비판을 받는 지점이다. 민주적 인공지능연구소(DAIR)의 알렉스 한나 박사는 “사람들은 AI로 인해 인류가 처한 실존적 위험으로 핵무기 통제 등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AI로 인해 처한 진짜 실존적 위기는 기후 변화”라고 경고했다.
미국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테네시·버지니아주 등의 전력업체들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맞춰 향후 15년 동안 수십 개의 천연가스 발전소를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전력업체 조지아파워는 이미 신규 가스 터빈 3곳의 건설 허가를 주정부에 요청했으며, 노후한 석탄 발전소 2곳의 퇴역 시기를 늦추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업체들은 풍력·태양광 같은 친환경 에너지로는 작금의 전력난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데이터센터가 건설되는 속도에 맞춰 친환경 전력망이 구축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통상 데이터센터는 1년만에도 완공이 가능하지만, 친환경 전력망 건설에는 최소 5년이 걸리고 장거리 전력선의 경우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전력망 전문가 타일러 노리스 박사는 뉴욕타임스(NYT)에 “새 가스 발전소 설립이 허가를 받는 순간 조 바이든 행정부의 2035년 ‘전력 부문 탄소 중립’ 목표는 실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는 전기뿐 아니라 ‘물 먹는 하마’이기도 하다. 달아오른 컴퓨팅 장비의 열을 식히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냉각수를 사용해서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진이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GPT-3가 10∼50개 질문에 답하면서 소비하는 물의 양은 500㎖가량이다. 성능이 향상된 GPT-4o는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로 인해 소비되는 물의 양이 2027년까지 42억∼66억㎥에 달해 영국의 한 해 물 소비량 절반에 버금갈 수 있다는 추정치도 나왔다.
결국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는 가운데 지역의 물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가 가뭄 피해를 더욱 키운다는 우려도 나온다.
◆AI, 기후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할까
아이러니하지만, AI는 기후 문제의 해결사로도 지목된다. AI를 활용해 비행·운전 등에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제안하는 등 친환경 기술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AI가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10%를 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국과 테크 기업 모두 데이터센터가 기후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중국은 냉각수를 끌어오는 대신 처음부터 바닷속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기업은 AI 학습과 추론 과정을 단축시키는 최적화 알고리즘과 전력 효율이 높은 그래픽처리장치(GPU) 및 가속기 개발, AI 모델 경량화에도 열을 올린다.
다만 태양광이나 풍력 등 청정에너지로 운영되는 무탄소 데이터센터로의 전환은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신규 데이터센터의 확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값싼 산업용 전기 요금은 전환을 더디게 만드는 주요 걸림돌 중 하나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난해 8.4%로 세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했다.
결국 화석연료를 이용한 값싼 전기를 생산해내는 나라와 재생에너지 선진국 사이의 탄소 배출 ‘불평등’까지 나타나고 있다. 2022년 핀란드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는 97%의 무탄소 에너지로 운영됐지만, 아시아에 있는 센터들은 무탄소 에너지 사용률이 4~18%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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