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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걱정에 에어컨 못 켜”… 쉼터·공원서 더위 피하는 게 일상 [심층기획-기후변화, 우리 삶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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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21 05:50:00 수정 : 2024-08-21 08: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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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취약층이 더 힘들어진다

‘찜통’ 쪽방촌 주민들 “집이 뜨거워서…”
쉼터·공원에서 더위 피하는 게 일상
소득 낮을수록 주거공간 피해 경험 ↑
2024년 온열질환자 2890명… 역대 2번째

정부, 에너지 취약계층에 ‘바우처’ 지원
낮은 집행률·복지 사각지대 문제 지적
“에너지빈곤층 세분화·기준설정 시급”

19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의 한 공원. 이미 해가 진 시간이지만 더위를 피해 나온 주민들로 공원은 북적였다. 대부분 인근의 동자동쪽방촌과 남대문쪽방촌 주민이다. 이곳 주민들은 한낮에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 등에서 더위를 피했다가, 쉼터가 문을 닫으면 집 밖에서 열기를 식히는 것이 일상이다. 남대문쪽방촌에 사는 김동윤(51)씨는 “집이 덥다 못해 뜨거울 정도여서 밥만 먹고 나온다”며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하다”고 토로했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옥탑방에서 최모(68)씨가 전날 복지센터의 지원을 받아 새로 설치한 에어컨 아래서 열기를 식히고 있다. 최씨는 "에어컨이 없을 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방바닥에 몸이 들러붙었다"면서 "지금도 전기세 걱정에 계속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상수 기자

김씨처럼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에게 올여름 무더위는 유독 혹독하다. 시에서 쪽방촌에서도 냉방장치를 틀 수 있도록 전기료 등을 지원하지만, 노후화된 건물 구조의 특성상 에어컨을 설치하기 어렵거나 설치해도 ‘전기료 폭탄’을 맞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무더위가 ‘재난’이 된 현실에서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에너지복지제도를 맞춤형지원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록적인 더위로 온 국민이 시름하고 있지만, 특히 주거 취약계층에게 여름나기는 더 가혹하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의 3층 옥탑방에 사는 최모(68)씨는 19일 지자체와 복지센터의 도움을 받아 에어컨을 설치했다.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고민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집 구조상 실외기를 건물 밖이 아닌 베란다에 설치해야 했던 탓에 베란다는 ‘한증막’이 됐다. 베란다를 채운 열기가 방으로 스며들어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부엌 옆 온도계는 30도를 가리켰다.

 

그렇다고 맘 놓고 에어컨을 틀 수도 없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최씨는 “전기료가 많이 나올까 봐 에어컨을 ‘껐다 틀었다’ 한다”며 “밤에도 불을 끄고 TV 빛으로 돌아다닌다. 덥더라도 샤워는 하루에 한 번만 하면서 최대한 아낀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가 2022년 발간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피해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낮을수록 ‘주거공간 피해’ 경험이 많았다. ‘월 소득 100만원 미만’(74.4%)은 최근 5년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경험률이 ‘500만원 이상’(44.6%)보다 3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폭염으로 인한 상해 등 피해 경험은 ‘월 소득 100만원 이하’(64.5%)가 ‘500만원 이상’(34.5%)보다 월등히 높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06∼2015년 10년간 가구소득과 연료비 지출액을 비교한 결과 소득 1분위와 10분위 가구소득 격차는 20배가 넘는데 연료비 지출 차이는 2배 수준에 불과했다. 가구소득 중 연료비 지출 비중은 1분위 가구가 18.55%로 2분위(7.98%)의 두 배가 넘었고, 10분위(1.81%)의 10배 이상이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촌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한 쿨링포그가 나오고 있다. 최상수 기자

올해 온열질환자 수는 역대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5월20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온열질환자는 총 2890명(추정사망자 2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기존의 역대 두 번째였던 지난해 5월20일∼9월30일 환자 수인 2818명보다 72명 더 많다.

 

기후변화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비용부담이 커진 저소득층을 에너지빈곤층으로 부른다. 주거공간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에너지 지출액이 가구소득의 10% 이상인 경우를 에너지빈곤층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없지만 우리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신부 △중증질환자 △한부모가정 등에 해당하는 경우를 에너지 취약계층으로 보고 2015년부터 에너지바우처를 지원하고 있다. 전기와 도시가스, 지역난방, 등유, 액화석유가스(LPG), 연탄 등 구매를 지원하는 제도다. 1인 세대의 경우 여름 5만5700원, 겨울 25만4500원을 지원한다.

바우처 금액은 꾸준히 늘려왔지만 낮은 집행률과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지적돼왔다. 바우처 집행률은 2017년 90.1%에서 2021년 71.1%로 낮아지는 등 미발급 가구가 작지 않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미래에너지융합학과)는 “복지 대상자가 신청을 못 해서 바우처 예산을 못 쓰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각지대에 있는 대상자를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우처 지급 대상자가 제도를 모르거나 거동이 불편해 신청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바우처 지원액을 구분하는 기준이 ‘구성원 수’뿐이어서 취약계층 특성이 반영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세분화해 지원할 수 있게 실태조사와 기준 설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우리나라 에너지복지정책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는 “에너지빈곤 정도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지급해 에너지복지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정한·윤솔·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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