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 전원 “동결” 재정 당국 경고
낙관론 접고 소비 진작책 내놔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현 기준금리(연 3.50%)를 또다시 동결했다. 한은 설립 이래 가장 긴 13차례 연속 동결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은이 유동성을 과잉공급함으로써 부동산 가격 상승의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번 기준금리 동결이 최근 집값과 가계대출이 급등한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재정 당국의 선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오는 9월 미국의 금리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유력한 상황에서 선제 금리 인하 전망도 예상됐었다.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향후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금통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금리동결을 결정한 것은 재정 당국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나 다름없다. 이 총재는 “정책금융(디딤돌·버팀목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서 대출이 늘어나는 위험이 현실화됐다”고 했다. 실제 2분기 가계대출은 13조원이나 급증했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21주째 고공비행 중이다. 이 총재가 정부 소관임을 전제하긴 했지만, 가계대출이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은 시의적절하다.
우려스러운 건 재정 당국의 안이한 인식이다. 한은이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4%로 3개월 만에 하향 조정했다. 정부·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치(2.6%)는 물론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2.5%)보다도 낮다. 심각한 내수부진 탓이다. 2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 속보치)이 -0.2%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 들어서도 민간 소비 등 내수 지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은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2분기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전국 소매판매가 9분기 연속 감소세다.
고금리·고물가 기조 속에 되살아난 수출의 온기가 내수로 전해지지 못하고 있어 문제다. 오히려 경제의 주축인 제조업은 ‘반도체’를 빼고는 뒷걸음치고 있다. 공장 가동률이 줄면서 산업용 전력과 원유 소비량마저 감소했다. 그런데도 재정 당국은 8월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설비투자 중심의 완만한 내수 회복 조짐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설 여건을 만들어 주는 건 정부·국회의 책무다. 정부는 소비를 진작시킬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조만간 있을 여야 대표 회담은 금융투자 소득세 폐지, 상속세 개편 등 정책 성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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