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또래 여성들과 가장 많이 얘기한 주제 중 하나는 ‘생리’였다고 자신할 수 있다. 대부분 생리 주기 조절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농담 반 진담 반 저주하는 대화였다. 호르몬은 가임기 여성의 난소에 분비되어 배란통, 생리통, 생리전증후군(PMS)을 두루 야기하는 ‘주적’이라서다. 여성들이 이로부터 자유로운 기간은 한 달중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모성 신화를 주입하기에 바쁜 미디어에 재현된 여성 말고, 현실의 여성들은 ‘평생 1명 낳을까 말까 한 아이 때문에 수십년간 이 고생을 한다는 것’에 대해 토로한다. 실제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이 0.7명대인 것을 고려하면 무리한 발상도 아니다. 무리하지 않은 것을 넘어, 이토록 비효율적이고 부당한 시스템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논의되지 못한다. 그럴 분위기가 좀처럼 조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받는 호르몬의 영향이 왜 한 달의 절반이나 되는지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 남성 중심 사회의 ‘무지의 권력’이 여전히 건재하는 한 그렇다.
이 권력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다면 적어도 다음 내용 정도는 다 아는 얘기였어야 한다. 수일에서 최대 일주일까지도 지속되는 생리 기간이 월요일과 금요일을 포함하지 않는 게 더 어렵다는 것, 생리 주기는 보통 21∼35일로 사람마다 다를뿐 아니라 여러 요인에 의해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 생리통이 업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여성이 과반(52%, 2016년 BBC 라디오5 조사)인데 상사에게 이를 말할 수 있는 경우는 27%에 불과할만큼 여성만이 겪는 고통은 축소되고 억압되고 있다는 현실 등을 말이다.
세계 월경의 날이 5월28일인 것은 생리를 평균 5일간 지속하고 28일 주기로 돌아오는 데서 착안했다. 편의상 이 주기를 한 달로 본다. 그 안에서 자궁에 수정란이 착상되는 배란일 전후, 그로부터 2주 뒤 임신이 되지 않아 필요없어진 난자가 혈액과 함께 배출되는 생리 기간, 생리 직전 PMS를 겪는 약 일주일을 합하면 14∼15일쯤 된다. 이때 분비되는 각종 호르몬은 여성의 일상에 침투해 다양한 증상과 통증을 안긴다.
생리에 대한 매우 기초적인 지식만 있었어도 “왜 생리를 항상 월요일과 금요일에 하느냐”는 헛소리는 못했을 것이다. 이는 2016년 대학가에 생리공결제가 도입될 때부터 줄곧 제기된 단골 레퍼토리다. 아무리 설명해도 바로잡히지 않는 이 주장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얼마나 묻히고 있는지 보여준다.
생리는 수일간 지속되는데 그 중 하루 주어지는 휴가를 주말에 붙여 썼다고 공공연히 문제 삼는 사회에서 그 휴가는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종류일 것인가. 눈치보며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가 훨씬 많을 것이란 추론이 더 합리적이지 않나. 무급인 생리휴가를 유급화하는 방향, 생리통에 대한 의학계나 남성들의 이해를 높이는 방향에는 소극적인 채 생리휴가 ‘악용’이니 ‘증빙’에 더 열을 올리는 최근 행태는 분명 온당해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한 달에 한번 생리하는 몸이기에 한 달에 한번 부여되는 생리휴가를 두고 뭘 더 어떻게 ‘증명하라’는 것인가.
생리통을 겪어보지도 않은 입장에서 “쉬어야 할 만큼 아픈 것은 아니”라고 멋대로 재단하려 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고통에 무심한 사회가 곧잘 하는 편의적이고 편향적인 해석이다. 이는 생리통이 별 것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이 아직도 형편없어 생리휴가를 자유롭게 못 쓰는 것이 현실이자 진실임을 외면하는 것이다. 실태 파악조차 없는 생리휴가 사용 현황을 수년 전 통계로나마 살펴보면 서울시 여성 공무원은 0.4%(2021년), 전체 여성 노동자 중에는 19.7%(2018년 국가통계포털)만이 생리휴가를 쓴다고 답했다.
최근 생리공결 사용 시 소변 검사를 의무화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철회 방침을 밝힌 서울예대 사례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 대학이 생리공결제 증빙 강화 방침을 정하면서 든 근거는 ‘2019년 681건이던 생리공결 건수가 지난해 2773건으로 폭증했다, 올해 1학기 출석 인정 53.5%가 생리공결이었다’는 것이다. 제도 사용률이 떨어질 때는 문제로 여겨지지 않다가, 있는 제도를 썼을뿐인데 ‘부당한 사용이 늘어났다’며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은 증명을 요구받는 현실은 의미심장하다.
논란 열흘 만에 소변 검사 의무화를 철회한 대학측은 “책임 의식을 느낀다”면서도 “소변 검사와 생리가 의학적으로 상관 관계가 없다는 판단 하에 철회하는 것”이라고 해 다른 방식의 증빙을 요구할 여지는 남겼다. 초점은 여전히 여성의 생리공결제 악용에 맞춰져 있다. 생리공결 사용을 어렵게 해 제도가 필요한 여성이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는 여기에 우선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리휴가를 둘러싼 이 나라의 ‘갑론을박’을 보며 가장 기막히는 지점은 생리가 다름 아닌 여성의 출산과 직결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출산은 그렇게도 원하는 사회가 임신 가능한 여성의 몸에는 이토록 무지하고 무관심한 채 아주 기본적인 배려조차 특혜나 역차별 취급하기 일쑤다. 2015년 전후 ‘페미니즘 리부트‘ 움직임과 도입 시기가 겹치는 생리공결제는 그로부터 10년도 안 돼 확산한 ‘페미니즘 백래시’ 흐름 속에서 이런 신세로 전락했다.
해외처럼 아프면 쉰다는 개념이 일상화돼있지 않은 한국에서 생리휴가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로 기능함에도, 이마저 축소하려는 사회가 보내는 신호를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여러 신호 중 하나로서다. 더 이상 결혼·임신·출산·육아를 생애 과업으로 삼지 않는 여성 세대는 그렇게 탄생했고, 사회는 다시 이들을 응징하듯 지원을 줄여간다. ‘결임출육’ 하지 않는 여성이 증가하는 것과, 이들을 존중하기보다 고까워하는 사회의 백래시적 반응은 그렇게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이런 세상에서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야기를 바꾸기 위해 먼저 변해야 할 쪽은 어디인지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답안지를 끝까지 못 본 척 하는 사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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