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펄펄 끓는 없는 폭염, 밤엔 잠 못 드는 열대야의 신기록 행진이다. 올림픽 경기를 보며 신기록은 모두 좋은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세상일에 시달린 사람들이 심신을 회복할 수 있는 짬도 주지 않으니 밉상이 따로 없다. 서울만 그런 건 아니다. ‘서울 공화국’에 치여 존재감이 없던 지방도 이번 기록 대열에서는 뒤처지지 않는다. 제각각 기상관측 이래 최장 최다 열대야를 겪고 있다.
이른 아침 동네 공원에서 운동하는 분들은 열대야 성토에 이구동성이지만 퇴치 방안을 놓고는 설왕설래다. 유일한 만장일치 방안은 파리 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대한민국 선수들이었다. 메달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또 똑 부러지게 설명하는 젊은 선수들의 말이 열대야의 끈적끈적한 불쾌지수를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감동이라고 했다.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도 말은 ‘심령(soul)을 일깨우는 예술’이며 공동체 의식과 공공선의 가치를 앙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자 태권도 57kg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유진(24) 선수는 “매일 같이 지옥 길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시작하면 2시간 동안 1만 번 이상 발차기를 하는데 하루에 세 차례, 3만 번 이상 찬 날도 많았다”고 했다. 목표는 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와 안기는 것이다. 양궁 단체전, 남녀 혼성, 개인전에서 3개 금메달을 거머쥔 김우진 선수는 “시골에 묻혀 있던 활 잘 쏘는 선수가 어느 날 국가대표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게 양궁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이라면서 “메달리스트라고 특혜를 주지 않는다. 예전엔 20강부터 참여하게 해줬는데 이젠 120명이 똑같이 64강부터 도전해야 한다. 올림픽 3관왕도 예외없다”며 양궁의 공정시스템을 당연시했다. 또 “양궁과 인생 모두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가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서 “양궁협회의 선한 영향력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희망했다.
선수들은 범인류적 축제인 올림픽 출전을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보지 않고 나라를 위한 도전으로도 간주한다. 남자 골프의 김주형은 8위로 경기를 마치고 30분이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골프를 시작한 뒤 이렇게 운 적이 없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컸다. 나라를 대표하는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여자 유도 57kg급 은메달리스트 허미미는 시상식에서 부르기 위해 애국가를 외웠다. 다음 LA 올림픽에서 꼭 애국가를 부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남자 자유형 400m에서 동메달을 딴 김우민은 결승전에서 “사지가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음에도 올림픽에 또 도전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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