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이 주민들의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나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근거 없는 발언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이민자들이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 주민들의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는 음모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작된 것으로, SNS를 통한 가짜뉴스 문제가 또 한 번 떠오르고 있다.
11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스프링필드에는 아이티 출신 이주민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인구 5만8000명의 스프링필드에는 최근 약 3년간 1만5000명 정도의 아이티계 이주민들이 유입됐다.
이민자에 대한 반발은 지난해 아이티 출신의 이주민이 무면허 운전으로 낸 사고에 11살 아이가 사망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고를 계기로 일부 스프링필드 주민들은 지역 사회에 급증하는 이주민으로 인해 임대료가 오르고 학교, 병원 등을 이용하기 어려워졌다는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균열이 생기자 그 틈을 SNS 발 가짜뉴스가 파고들었다.
일부 우익 계정에선 미국 내 임시 보호 지위를 부여받은 아이티 이주민들이 스프링필드의 반려동물을 납치해 먹고 있다는 주장이 퍼뜨렸다.
사실 확인 단체인 뉴스가드(NewsGuard)에 따르면 근거 없는 주장은 ‘스프링필드 오하이오 범죄 및 정보’라는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에서 시작됐다.
페이스북 내에서 익명의 작성자는 아이티 이주민이 사는 집을 언급하며 “친구 딸의 고양이를 (이주민들이) 도살할 사슴처럼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먹기 위해 토막 냈다”고 주장했다.
해당 게시물을 캡처한 사진은 SNS상에서 확산했고 또 다른 가짜뉴스로 이어졌다.
29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엑스(X·옛 트위터)의 ‘엔드 워크네스(End Wokeness)’란 이름의 한 보수 계정은 답글을 올리고는 “카멀라 해리스와 조 바이든이 집권했을 때 아이티 이주민들이 마을로 들어왔다”며 “이제 오리와 애완동물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적었다. 게시물은 나흘 만에 480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6만9000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가짜뉴스가 확산하자 스프링필드 경찰국은 “이주민 커뮤니티 내에서 반려동물이 해를 입거나 학대당했다는 믿을 만한 보고나 구체적인 주장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일부 SNS에선 한 흑인 여성이 차도에서 죽은 고양이를 먹은 혐의로 체포됐다는 영상이 공유되고, 이주민들이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다.
스프링필드 내에서 시작된 가짜뉴스는 SNS 인플루언서와 정치권이 악용하며 몸집을 키웠다. 지난 7일 SNS상에서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한 우익 인플루언서는 ‘이민자가 애완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주장을 해리스 부통령의 정책과 연결시키는 게시물을 엑스에 올렸다. 이후 극우 SNS 갭(Gab)의 창립자인 앤드류 토바가 같은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며 관심을 촉구했다.
결국 TV 토론 전인 9일 오후, 약 159명의 극우 인플루언서, 23명의 공화당 정치인 및 당 관계자가 온라인에 해당 내용을 공유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가짜뉴스를 생중계 토론에서까지 이용했다.
가짜뉴스로 인해 이주민들은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커뮤니티센터 책임자인 바이슬 도세인빌은 로이터통신에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어디를 가든 조심해야 한다”며 아마존 창고에서 일하는 자신의 친구는 적대감에 퇴사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티 이주민들의 소식을 전하는 아이티타임스는 SNS상에 인종차별적 표현들이 늘어나며 아이티계 주민들이 괴롭힘, 폭행, 협박 등을 보는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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