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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제훈씨네’ 이제훈이 극장을 지켜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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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19 22:52:51 수정 : 2024-09-19 2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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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위기 단관·독립영화관들
전국 곳곳 찾아가 유튜브 소개
사라질 위기의 공간들 재조명
영화 생태계 다양한 염원 담겨

뭐가 그리 급하다고,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떠났을까. 충무로 터줏대감으로 한 시대를 평정한 66년 역사의 ‘대한극장’이 셔터를 내렸다. 9월30일로 예정된 폐관일보다 빠른 이별이다. 대한극장의 퇴장은 영화관 하나의 종료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건 충무로가 한국 영화 상징이었던 시절의 완전한 사멸을 의미한다. 이제 단관 극장의 전통을 가진 영화관은 서울에 없다.

대한극장의 경쟁력은 2000년대 중반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 체인이 세를 확장하면서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버텼다. ‘단성사’가 폐업하고(2008), ‘피카디리’가 CGV에 운영권을 넘겨주고(2015), ‘서울극장’이 2021년 은막 뒤로 사라진 때에도 버텼다. 그 어렵다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도 견뎌냈다. 그러나 팬데믹이 가져온 OTT라는 거대한 파도는 넘지 못했다. “영화 상영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지속적인 적자 해소”가 운영사가 밝힌 폐업 이유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많은 인프라가 몰려 있는 서울의 극장 상황이 이럴진대, 지역 극장이나 독립영화 상영관들의 현실은 어떨까. 녹록지 않다. 국내 최고령 극장인 인천 ‘애관극장’, 1935년 지어진 ‘광주극장’도 경영에 부침을 겪는 중이다. 마침, 문화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공공 매입이 추진 중이던 ‘원주 아카데미’가 시장 교체와 함께 철거로 방향을 틀어버린 지난해 사례를 영화계는 무겁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사실, 지역에 기반을 둔 극장 상황을 조금 더 내밀하게 알게 된 건 유튜브 ‘제훈씨네’를 통해서였다. 여기서 제훈씨는 배우 이제훈.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제훈이 전국 독립영화관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콘셉트의 채널이다. 화제성 높은 상업영화 대신, 홍보 기회를 부여받지 못해 온 독립·단편영화와 영화인들이 조명된다. 은퇴한 영사기사까지 모셔서 극장의 역사를 둘러보는 대화가 ‘킬포’(킬링포인트)다.

엄밀히 말해 PPL(간접광고)이 붙을 수 있는 기획이 아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콘셉트도 아니다. 아니,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했다면 애초에 할 수 없는 시도다. 유튜브가 유명 연예인의 홍보 창구이자, 수익 창출 통로로 자리 잡은 시대에 찾아온 희귀 변종 같은 채널이랄까. 그렇다면 그는 왜? ‘제훈씨네’는 극장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해 온 이제훈의 영화를 향한 애정이 행동으로 옮겨진 기록이다. 독립영화 ‘파수꾼’(2011)으로 주목받은 후 어느덧 한국 영화 허리로 자리매김한 영화인으로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산업의 기형적인 변화를 근심하는 시선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공간을 영상에 기록하고, 그 영상을 본 이들이 공간을 찾아오고, 그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를 곳들이 영원히 지속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 그것이 ‘제훈씨네’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 같다.

단순히 역사가 깊은 극장들만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다락방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는 강릉의 ‘무명극장’, 연희동에 불시착한 39석 규모의 ‘라이카시네마’, 문화적 기반이 허약한 제주도에 단편영화를 소개하겠다며 용감하게 문을 연 ‘숏트롱시네마’, 성수동에 새로 들어선 큐레이션 중심의 ‘무비랜드’ 등 극장 고유의 개성과 콘셉트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극장들도 소개한다. ‘보존’뿐 아니라, OTT 시대에 극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대안이 함께 담겨 있는 셈이다.

“한국 독립영화가 심은 씨앗이 언젠가 하나둘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는 상상을 했다.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는 물, 햇빛, 공기, 시간이 어우러지며 숲이 만들어지는 기적을 이루듯, 이런 귀한 관심이 모여 풍요로운 영화 생태계를 만들어 가길 바라본다.” 채널에 달린 온도 높은 수많은 댓글 중 하나다. 앞서 언급했던 이제훈을 세상에 알린 작품은 ‘파수꾼’이다. 참 운명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극장 영화와 운명을 나눠 가지며 성장해 온 배우가, 극장 파수꾼의 자리를 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영화계엔 파수꾼이 더 필요하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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