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혜택자 ‘주관적 건강’ 높아
업무 몰입도·직무 만족도 좋아
복지혜택 없는 근로자 스트레스 ↑
“기업 복지, 근로의욕에 큰 영향
약자 중심 매칭으로 복지 늘려야”
서울에 있는 한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박모(35)씨는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뒤 근로 의욕이 더 떨어졌다. 요즘 알 수 없게 무기력하다는 푸념을 친구에게 늘어놨던 게 화근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본인도 경미한 우울감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을 받고 난 뒤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박씨는 심리상담 비용을 알아보다가 괜한 박탈감에 상담 시도마저 조용히 접었다.
박씨가 느낀 감정에 실체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업 복지 유무에 따라 근로자의 직무성과 및 스트레스 정도가 유의미하게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 복지가 근로의욕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정부-기업-근로자’ 형태의 매칭형 사업으로 복지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19일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발간한 ‘근로자복지카드 도입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복지를 제공받는 근로자는 제공받지 않는 자보다 유의미하게 주관적 건강이 좋았고, 직무만족과 업무몰입, 직무성과도 높았다. 직무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5인 이상 300인 미만 규모 중소기업에 1년 이상 근속 중인 재직자 550명을 복지 혜택이 있다고 답한 근로자(426명)와 복지 혜택이 없다고 한 근로자(124명)로 나눠 △주관적 건강 △직무만족 △업무몰입 △직무성과 △직무스트레스 정도를 비교한 결과다.
구체적으로 7점 척도에서 기업 복지를 제공받는 사람의 주관적 건강 평균은 4.42점으로 기업 복지를 제공받지 않는 사람의 평균인 4.07점보다 0.35점만큼 높았다. 45점 척도인 직무만족 조사에서는 전자의 평균이 27.27점으로 후자의 평균 25.39점보다 1.88점만큼 높았다.
업무몰입 부분에서는 전자 평균이 36.53점으로, 후자 평균 33.01점보다 3.52점만큼 높았다. 업무에 대한 정확성, 신속성 등을 묻는 직무성과 문항에서도 전자 평균은 18.12점, 후자 평균은 17.41점으로 나타났다. 4점 척도, 24개 문항으로 구성된 직무 스트레스 조사에서는 후자 평균이 71.43점으로 전자 평균 68.44점보다 2.99점만큼 높게 집계됐다.
다만 기업 복지를 이용하는 근로자라고 해도 전반적인 만족도는 낮은 편이었다.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에 만족한다’는 문항에 ‘그렇지 않은 편이다’(28.4%), ‘보통이다’(27.8%), ‘전혀 그렇지 않다’(26.5%), ‘그런 편이다’(15.8%), ‘매우 그렇다’(1.5%)순으로 응답해 과반(54.9%)이 불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신규 기업 복지 서비스인 ‘근로자복지카드’(가칭)를 도입할 때 매칭 지원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을 인사담당자 75명에게 한 결과 ‘매칭의향이 있음’이 61.3%, ‘추가지원이 불가하며, 매칭의향 없음’이 38.7%로 매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컸다. 매칭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담당자 46명에게 근로자 1인당 기업이 지원 가능한 금액을 묻자 ‘근로자 1인당 5만원 이상 10만원 미만까지 지원 가능’(39.1%), ‘5만원 미만까지 지원 가능’(19.6%), ‘10만원 이상 15만원 미만까지 지원 가능’(15.2%) 등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근로자복지카드를 도입했을 때 중소기업 중에서도 형편이 좀 더 괜찮은 기업으로 지원이 집중될 우려가 있어 약자 중심의 매칭지원 방식을 택해야 한다”며 공단, 사업주, 근로자 각각 20:5:5씩 부담하는 방식 또는 2:1:1 방식을 제안했다. 중소기업 근로자 중 소득 기준이 더 낮은 근로자를 우선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 근로자가 체감하는 복지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근로자복지카드 같은 정책은 대·중소기업 격차 완화나 중소기업 근로자의 사기 진작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 재정 투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 대상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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