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출퇴근제 등 유연 근무 제도화
가족친화 우수 中企 세무조사 유예
국·공립 직장 어린이집 지역 개방도
주4일제 성공적 안착시킨 한화제약
경단녀 줄인 마녀공장 ‘자율출근제’
우수 사례 통해 직장문화 변화 모색
7월 출생아 수가 12년 만에 최대로 늘고, 결혼과 출산 의향도 동시에 증가한 데 관해 ‘저출생 저점은 지났다’는 기대 섞인 분석이 나온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이런 추세를 이어가기 위해 기업과 근로자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저고위는 25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제4차 인구비상대책회의 겸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 성과공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결혼·출산에 대한 3월과 9월 인식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미혼 남녀의 결혼 의향이 4.4%포인트, 자녀가 없는 부부의 출산 의향이 5.1%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당장 이 지표만으로 저출생 추세가 반전됐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저출생 문제가 더 악화하고 있진 않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당 조사 하나만으로 판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며 “다만 그간 합계출산율 등 지표가 워낙 저점이었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이제는 반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저효과가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저고위는 이런 모멘텀을 살리는 차원에서 기업 현장에서 제기된 불합리한 제도들을 손질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4시간 근무 시 30분 휴게시간 의무’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 시간이 4시간 이상일 때 사용자는 30분 이상 휴게시간을 근로 시간 도중에 근로자에게 주게 돼 있다. 8시간 이상일 때는 1시간 이상을 보장해야 한다. 원칙대로면 4시간만 근무하는 경우에는 3시간30분을 일하고, 30분을 쉰 뒤 30분을 더 일하고 나서야 퇴근이 가능하다. 저고위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4시간만 근무 시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30분 휴게시간 없이 퇴근할 수 있게 개선할 계획이다.
정 연구위원은 “근로 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때 휴게시간이 애매할 수 있어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는 문제”라며 “유연 근무 논의의 차원이 넓어진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외에 △가족친화 또는 일·생활균형 우수 중소기업에 정기 세무조사 유예 △임신·육아기 근로자 유연 근무 확대 △국·공립 직장어린이집 지역사회에 개방 등도 추진한다. 여성가족부가 선정하는 가족친화인증기업, 고용부가 선정하는 일·생활균형 우수기업을 대상으로 국세청 정기 세무조사를 유예하고, 지자체와 협의해 지방세 세무조사 유예도 검토에 나선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전날 사전브리핑에서 “현재 서울, 부산, 광주, 대전, 충북 등 지자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회신했다”고 말했다.
임신·육아기 근로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 근무를 허용하도록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를 거쳐 제도화한다. 현재 유연 근무는 기업 노사가 자율 협의해 이뤄지고 있다.
저고위는 이날 성과공유회를 열고, 주4일 근무제, 완전 자율 출퇴근 등 기업의 일·가정 양립 우수 사례를 알렸다. 저출생 타개의 핵심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화제약은 2020년부터 생산공장에서 주4일 근무제를 도입했는데 월·목은 8시간, 화·수는 11시간30분씩 근무해 금·토·일 휴무를 보장하는 식이다. 사무직·연구직 직원들은 시차출퇴근제를, 외근이 잦은 영업직 직원들은 원격근무를 주로 활용해 업무 특성에 맞는 유연근무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저고위 관계자는 “제조업체도 생산성 하락 없이 주4일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완전 자율 출퇴근제를 도입한 중견기업 사례도 눈길을 끌었다. 통상 자율 출퇴근제를 운영하는 기업은 ‘필수 근무시간대’를 지정해놓는데 화장품 제조 중견기업인 마녀공장은 이마저도 없는 완전 자율 출퇴근제를 채택했다. 온라인 협업 프로그램과 근태관리 시스템을 십분 활용한 결과다. 마녀공장 측은 “직원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업무에 몰입하고, 충분히 육아시간도 확보해 이직률 감소, 매출액 증가 등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마녀공장의 이직률은 2021년 말 46%에서 지난해 말 12%로 급감했다.
성과보고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직원의 임신·출산·양육을 지원하고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혁신하는 것이 기업에 비용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오히려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되고 좋은 인재들을 유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범중소기업계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일·가정 양립 위원회’를 출범시켜 현실에 맞는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적극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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