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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몇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왔다. 추석 명절에 고향을 찾은 동창들의 웃음과 담소가 가득하다. 바닷가로 옮겨 또 차를 나눈다는 설명도 도착했다.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끝이 없는 길’인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치기, 질풍노도 같던 청소년기의 그리움, 오랜 객지 생활이 준 희로애락의 외로움이 어디 한두 시간으로 소화될 일이겠는가. 향토색이 짙은 유장한 문체의 소설을 쓴 이문구 선생의 말처럼 우리의 몸이 고향 밖에서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고 해도 고향은 늘 마음속에서 우리를 다독였었다.

“…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정호승의 ‘수선화에게’). 명절의 고향은 우리를 ‘마을로 내려오는 산 그림자’,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되게 하고, 각자의 밀실을 열어서 외로움과 그리움이 어울리고 서로를 달래 주는 따뜻한 광장이다.

오래전 추석과 설날을 가족이 만나는 소중한 기회로 지켜가자는 칼럼을 썼다가 댓글로부터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공자님 말씀만 늘어놓지 말라는 거였다. 명절에 가중되는 여성의 노동과 심적 부담을 줄이는 남성의 역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제했건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대학교수의 꼴값이라고 했다. ‘원수처럼 보지 않고 사는 가족’, ‘음식 준비와 대접으로 인한 여성의 희생’, ‘남성 위주 가부장 문화의 표본’, ‘비민주적 잔재’ ‘명절 후에 증가하는 이혼사례에 대한 통계치’를 거론하며 비판하는 댓글이 옹호하는 댓글을 압도했다. 용어의 강도도 훨씬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3700만명이 ‘민족의 대이동’을 실행하였다. 매년 기록이 경신되는 추석 연휴 해외여행객 숫자도 신기록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추석과 설날 명절을 쇠는 방법으로 제 형편에 따르는 방식 외에 묘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족 대이동’이 지속되고. 특히 ‘대가족이 되어 보는 기회’는 명맥을 이어갔으면 한다. 가족애와 고향 사랑이 현대가 몰아붙이는 전통 가치의 해체 파고를 헤쳐 나가며 ‘따뜻한 광장’이 되어 오래된 미래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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